- 각주 등과 같은 표기는 원문의 방식을 따랐다.
- 각주 번호는 전체 논문의 각주를 단일한 순서로 매겼다. 원문의 각주는 각 챕터별로 번호가 새롭게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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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우리는 책상 위에 있는 물체의 움직임, 그것과 연동되어 화면에 나타나는 ‘겉보기 움직임scheinbare Bewegung’의 관찰, 그리고 그 물체에 달린 버튼을 누르는 행위, 이 모든 것을 하나의 통합된 행동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일까? 우리는 이 행위를 너무나도 일상적인 것으로 여겨 보통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며, 단지 “무언가를 클릭한다”라고 표현한다.
이 질문에 대해서 우리는 인간과 컴퓨터의 만남을 다루는 컴퓨터 과학 내 학문 분야인 휴먼-컴퓨터 상호작용Human-Computer Interaction을 참고하여 답을 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마우스와 화면 조작이라는 행위를 이미 매우 다양한 사고방식과 패러다임 내에서 분석해온 이 분야의 최신 연구에서 출발하는 대답을 찾는 대신, 오히려 여러 면에서 오래된 관점을 통해 이 질문을 새롭게 조망하고자 한다. 이 관점은 되먹임 혹은 피드백feedback이라는 개념에 기반하며, 일련의 학문들에서는 핵심 개념으로 다뤄진다. 이 개념은 지난 수년간 인문학 담론에서 뚜렷한 부흥을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컴퓨터 과학과 인터랙션 연구에서는 보통 자기 앞단의 한 역사적 단계로서만 언급될 뿐이다. 이 학문은 바로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의 핵심분야 이기도 하다.
현대 인문학에서 이루어지는 사이버네틱스에 대한 논의는 주로 그것이 하나의 “인식론적 충격epistemische Erschütterung”1의 촉매제로 작용했다는 점에 집중한다. 이 충격은 기술에 대한 급진적인 사유로부터 출발하여 인간, 동물, 기계 사이의 경계를 근본적으로 뒤흔들며2, 철학적 관점에서 “인간의 종말”3을 예고한다. 이러한 전개는 사이버네틱스 초기 문헌 중 한 편의 제목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노버트 위너가 동물과 기계 양쪽의 “조절Regelung”과 정보전달Nachrichtenübertragung4”을 동일시한 유명한 문구가 바로 그 것이다.
피드백은 그당시에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사이버네틱스의 근본적인 요소들 중 하나로 여겨졌으며5, 전성기 시절에는 오히려 가장 핵심적인 요소로 여겨지기도 했다6. 인식론적 충격에 있어서 피드백의 역할은 물질적 행위주체와 인간적 행위주체 사이에서 되먹임되는 순환인과에서의 자율적 인간 주체성Handlungsmacht, oder agency7을 문제화하는 데 있다.8
반면, 사이버네틱스를 급진적인 피드백 지향 제어 기술의 역사로 재구성하는 서술은, 그것이 곧 상호작용적 연산interaktives Rechnen의 전사前史로 읽힐 수 있다는 점에서 지극히 평범하다. 제어 공학적 장치와 기법이 형식 수학의 기계화와 결합하면서, 정보학의 상호작용을 가능케 하고 이 논문에 제목을 부여하는 새로운 기계 유형이 탄생한다. 바로 이러한 ‘피드백 머신’이 계산 과정의 새로운 표현 방식과 그에 대한 개입 방식을 요구하게 되며, 이 대상이 상호작용 연구의 핵심 연구 주제가 될 것이다.
따라서 책상 위 손의 움직임과 화면에 나타나는 표현이 어떻게 결합되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탐구는, 사이버네틱스와 상호작용적 컴퓨팅interaktives Rechnen을 상세히 복원하는 작업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탐구는 특히 미국 연구 공동체denkkollektive에 주목하는데, 이들 맥락 속에서 ‘고전적’ 피드백 제어기술과 그로부터 발전한 사이버네틱스가 탄생했으며, 동시에 최초의 상호작용 컴퓨터와 그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제어기술과 사이버네틱스에서 정보학informatik 및 휴먼–컴퓨터 상호작용Human-Computer Interaction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연속성과 단절을 살펴볼 수 있으며, 오늘날까지 상호작용적 컴퓨팅의 형태를 결정짓는 장치 및 조직 구조, 연구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 실험 시스템과 ‘인식론적 사물epistemische Dinge’을 구체적으로 규명할 수 있다.
이러한 복원을 바탕으로, 상호작용 그리고 그와 함께 형성된 인지과학에서 사이버네틱스가 망각된 역사를 추적할 수 있으며, 동시에 상호작용을 이해하기 위한 사이버네틱스적 사고를 재활성화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다. 이는 인지과학적 상호작용 이론에 대한 비판이자, 미디어아트나 미디어학이 제기하는 ‘상호작용에 의한 조건화Konditionierung durch Interaktion’ 비판에 대한 반박으로, ‘직접 조작direkte Manipulation’ 이론이나 ‘촉지 가능한 인터페이스greifbare Schnittstellen’ 이론의 보완으로, 그리고 몸의 활동과 지각이 상호작용 과정에서 어떻게 결합하는지를 묻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잠재적 해답으로 기능한다. 이로써 우리는 그 결합 자체가 우리가 상호작용한다고 가정하는 세계와 기호들의 토대가 될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 여정은 결코 앞으로 곧게 뻗어나가지 않는다. 이 여정은 18세기의 펜실베니아와 메릴랜드 사이에서 출발해 과학기술학STS, 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미디어학, 기호학Semiotik, 실험심리학 및 형태심리학Gestaltpsychologie,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보학적 상호작용 연구informatische Interaktionsforschung와 같은 다양한 담론을 활용하다가, 최종적으로 인지과학에서의 신-사이버네틱스적neokybernetische 시도들을 살펴보게 된다. 방법론적으로도 이 여정은 인문학적 연구 기법과 미디어아트 및 실증적 심리학의 실험적 실천을 동일하게 차용한다.
사이버네틱스에 집중함으로써 얻어지는 상호작용에 대한 관점은, 이 학문의 기술적 사유에서 출발하여 1950년대 ‘재유입 원리Reafferenzprinzip, reafference principle’의 생리학적 토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나아가 현재 연구 동향까지 아우른다. 이 관점은 인간과 컴퓨터 간의 되먹임feedback이 가지는 순환적 성격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려는 시도이다. 단지 상호작용 연구에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인간-컴퓨터 인터페이스가 역사적·구조적으로 “사이버네틱 인터페이스cybernetic interface[s]9”로 이해되어야 하며, 사이버네틱스적 시각 없이는 인터페이스가 지닌 문화적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거나 수용·비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인터페이스가 지각, 경험, 그리고 문화를 위해 설정하는 변화의 조건을 경험하고 이해하며 문화적으로 통합하기 위해 사이버네틱스적 관점과 인터페이스 지각을 개발·체험·이해할 필요가 있다.”10
이 연구는 한편으로는 사이버네틱스를 연구 대상으로 삼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의 방법론으로 삼으며 그 사이를 진동한다. 이 연구의 첫째 목표는 ‘1차 사이버네틱스’의 역사와 역할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해 그로부터 상호작용 컴퓨팅Interaktives Rechnen과 인터랙션 연구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밝혀내면서 동시에 이러한 재구성이 바로 해당 분야에서 사이버네틱스를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기를 꾀한다. 아울러 이 연구는 휴먼-컴퓨터 상호작용 영역 바깥에서도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며, 사이버네틱스의 기본 프로그램과 그 한계에 주목하고 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2차 사이버네틱스’11 이상의 방법으로 이를 발전시켜 온 다양한 담론들도 배제하지 않는 포괄적 시각을 견지한다.
“사이버네틱스의 아이디어들은 훌륭했으나, 그것이 곧 그 아이디어가 옳다는 말은 아니다.”12
제1부
행동을 지각하기
1
겉보기 움직임
17~18세기 천문학자들은 천체의 겉보기 운동을 관측하면서 오류를 범했다. 그러나 천문 관측에서 위치와 시간을 산출하는 과정이 순환적recursiv 성격을 지니기 때문에, 이러한 오류는 오직 서로 다른 두 관측자 사이의 일정한 차이로만 나타났다. 이러한 차이는 '개인 오차persönliche Gleichung’라는 이름으로 천문학 실무에 정착했으며, 훗날 실험심리학의 창립 신화로 자리 잡았다. 초기 실험심리학은 별 관측에서 작용하는 심리적 법칙을 실험적으로 규명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곧 새로운 형태의 ‘겉보기 움직임’을 발견했다. 다시 말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움직임을 지각하는 현상을 발견한 것이다. 이 효과에 대한 연구는 결국 우리가 어쩌면 행동하는 방식대로 지각할 수밖에 없는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시사하게 된다.
1.1 개인 오차DIE PERSÖNLICHE GLEICHUNG
하룻밤 사이, 존 하랜드의 복도에는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듯한 낯선 의식을 치르는 한 무리의 조직된 남자들이 나타났다. [...] 그들은 기기를 자오선에 맞췄다. “지구가 자전하는 방식 때문에,” 메이슨은 설명했다. “별들은 하늘 위를 호를 그리며 이동합니다. 각 별이 자신의 호에서 가장 높은 지점에 이를 때, 우리는 그 순간 그 자리에 있어 정확히 북쪽을 향해 그것을 관측하는 것이죠.” [...]
하랜드가 몸을 굽혀 접안렌즈를 들여다본다.
“저건 물체를 더 가까이 보려고 쓰는 거 아닌가요?”
“달이나,” 딕슨이 말한다, “행성들은 그렇지만… 별들은 아니죠.”
“별에 대해서는,” 메이슨이 덧붙인다, “그저 그 별이 어디에 있고, 언제 특정 기준선을 통과하는지만 알면 됩니다.”
“그게 전부인가요?” […] “이거 아주 간단하네요. 이렇게 위아래로 움직이면…”
“카펠라를 수평 십자선에 맞추세요.” 딕슨이 조언한다.
“이봐요!” 메이슨이, 그리 불쾌하지는 않은 어조로 말한다. “여기서 공인된 천문학자는 누굽니까?”13
찰스 메이슨Charles Mason은 그리니치 천문대의 세 번째 왕립천문학자 제임스 브래들리James Bradley의 조수로 일한 경력을 가진 명실상부한 공인 천문학자였으니, 이 상황에서 정말로 기분이 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천문 관측은 결코 “아주 간단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것은 전 세계에 걸친 관측자, 기기, 통신 수단, 기록 매체의 네트워크 속에서, 행위와 관측을 정교하게 조율하는 절차를 오랜 훈련을 통해 익히는 것을 요구한다.
토머스 핀천Thomas Pynchon의 소설 속, 그리고 실제 역사 속에서, 존 할랜드John Harland의 복도에서 벌어진 이 장면의 시점에 찰스 메이슨과 제레마이아 딕슨Jeremia Dixon은 북아메리카에 머물고 있었다. 그들은 펜실베이니아와 메릴랜드 두 주州의 영토 경계를 확정하기 위해 파견된 것이다. 두 지역의 소유주들 사이에서는 이미 1681년부터 국경 분쟁이 이어져 왔는데, 이는 윌리엄 펜William Penn이 신대륙의 이 지역 토지를 하사받을 때 발급된 증서가 그 경계를 명확히 규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14
따라서 1760년, 메이슨과 딕슨은 북위 39도 43분 20초의 평균 위도를 따라, 가능한 한 완벽하게 직선으로 된 경계선을 설정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이 경계선은 주변의 지형적 특성을 일절 고려하지 않은 채, 벌목꾼들이 숲을 가르며 개척한 길 위로, 규칙적인 간격의 표식을 세우는 방식으로 실측·표기되었다. 이 선은 훗날 Mason–Dixon Line이라는 이름으로 미국 역사에 남게 되는데, 이후 북부와 남부를 가르는 경계선(나아가 노예제와 노예제 폐지 운동 사이의 상징적·법적 경계선)으로, 그리고 음악 장르 Dixieland의 명칭 유래로 자리 잡았다.15
이러한 선을 긋는 일은, 지리적으로 위선緯線, 위도의 원호으로 이해되며, 무엇보다 반복적인 위치 측정을 요구한다. 지리적 경도와 위도를 정확히 산정하여 선이 정확한 지점에서 시작되고 그 경로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18세기 당시 이 과제는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펜 가문과 메릴랜드 영주인 발티모어 남작은 이에 영국 왕립학회Royal Society에 도움을 요청하였다. 왕립학회는 메이슨이라는 천문학자와 그의 조수인 측량 전문가 딕슨을 파견했다.16 두 사람 모두 별 관측에 능숙한 경험 많은 전문가였다. 1761년, 그들은 왕립학회 명령으로 매우 희귀한 금성 통과 현상Venustransit을 관측했는데, 이 관측은 네빌 마스클라인Nevil Maskelyne과 협력하여 진행되었다. 마스클라인은 메이슨과 딕슨이 미국에 있을 때 왕립천문학자Astronomer Royal로 임명되었다.
메이슨과 딕슨이 경계선을 그을 때, 위치 측정과 천문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었다. 당시 지구 표면의 위치는 오직 천체 관측을 통해서만 결정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별 관측이 쓸모 있는 몇 안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자신이 지구 표면의 어디에 정확히 위치하는지 알아내는 일이다.”17 측지천문학geodätische Astronomie에서는 하늘이 기준 체계 역할을 하여 지구 표면상의 좌표를 결정하게 해준다. 즉, 지구상의 장소 결정은 천체의 “위치Örter”를 관측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말하는 위치는 우주 공간상의 좌표가 아니라, 별들이 관측자에게 보이는 방향을 의미한다.18 천체의 위치와 움직임은 의도적으로 ‘겉보기scheinbar’라고 불리는데, 여기서 ‘겉보기’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항상 특정 관측자의 시점과 관계를 맺으며, 그 관점에서 특정한 방식으로 나타남을erscheinen 뜻한다.19
별들의 겉보기 움직임은 지구 자전의 결과다. 지구가 자전하기 때문에 천체들은 하루 주기로 하늘20 위를 호를 그리며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천체의 신뢰할 만한 반복적 출현은 예측 가능하고 관측 가능하며, 오랫동안 가장 정밀한 ‘자연의 시계’ 역할을 해왔다. 이는 이용 가능한 시계들 가운데 가장 정확했을 뿐만 아니라, 시간과 장소에 대한 정확한 표상 자체를 처음으로 가능하게 했다.
시간은 이 ‘자연의 시계’를 통해 구체적인 관측 절차에 의해 정의된다. 예를 들어 태양이 정점에 이르는 순간, 즉 남중Kulmination의 시각은 곧 그 지역의 정오Mittagszeit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 남중의 시각과 높이는 관측자의 위치Ort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오히려 이 차이를 통해 지상의 위치를 산출할 수 있다. 태양이 남중할 때의 고도 각도는 해당 지점의 위도를 결정하고, 반대로 경도는 한 지점의 지역시간과 다른 지점의 지역시간 사이의 차이로부터 도출된다.21 이처럼 하늘의 별들이 맺는 겉보기 위치Örter와 지상의 위치Orte는 동일한 좌표계 안에서 각도로 측정되며, 지구 표면의 좌표체계는 결국 그 위의 하늘에 고정된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천문학은 시간과 공간을 정밀하게 규정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고, 이는 곧 대영제국의 토대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축 가운데 하나였다.22
처음에 별을 관측할 때 사용하는 좌표계는 관측자 중심적이다. 이 지평 좌표계horizontales Koordinatensystem는 관측자의 지평선을 기준으로 별의 방향을 표시한다. 여기서 방위각Azimut은 별이 북쪽 자오선Meridian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를, 고도는 지평선 위 별의 높이를 나타낸다. 그러나 이 좌표계를 천구의 적도 좌표계äquatoriales Koordinatensystem나 지구의 지리적 좌표계로 전환하려면, 지역적 시간과 위치를 지구 자전을 통해 산출해야 한다. 따라서 관측이라는 활동은 항상 장소와 시간을 서로 연결한다.
지리측량 천문학geodätische Astronomie에서 항성Fixsterne은 단지 시간과 위치를 결정하는 지표로만 읽힌다. 따라서 메이슨과 딕슨이 별을 통해서 알고자 한 것은 “그 별이 어디 있는가wo er ist와 언제 특정 기준선Bezugslinie을 통과하는가”라는 사실뿐이다. 이 기준선은 대체로 국지자오선lokaler Medirian이며, 관측자는 북쪽을 정확히 바라보며 별이 이 선을 통과하는 순간을 기록한다. 이러한 절차는 항성통과 관측Sterndurchgang/-transit이라 불리며, 이를 위해 특별한 기구가 사용된다. 통과망원경Passageninstrument은 망원경을 국지자오선 위에 맞추어 설치한 장치로, 동서축을 중심으로 남북축을 따라 기울일 수 있다.23 망원경의 배율 덕분에 별의 겉보기 움직임은 훨씬 더 뚜렷하게 보인다. 60배에서 80배 정도의 배율에서는 불과 1초 안에 그 움직임이 확실히 감지된다.24 망원경의 초점면에는 수직 방향으로 여러 개의 평행한 선이, 수평 방향으로는 하나의 선이 설치되어 있다. 관측자는 먼저 별(존 하랜드의 경우 카펠라Capella)을 수평선 위에 고정한 뒤, 그 별이 차례대로 수직선을 가르거나 이등분biseziert하는 순간을 관찰한다25(그림 1).

그림 1: 통과망원경Passageninstrument을 통해 본 모습 (Edward S. Holden, 「The Personal Equation」, Popular Science Monthly, 6권, 1875, 385–398쪽, 386쪽)
북쪽을 바라보는 그 정확한 순간richtiger Moment을 기준으로 하는 이 방식은 사실상 순환적zirkulär이다. 별의 통과Passage가 언제 일어났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현지시lokale Zeit를 알아야 하고, 이 현지시는 다시 별 관측으로부터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별 통과Sterndurchgänge 관측은 관측된 현지시를 기록하고 이후 관측 과정에서 다시 활용할 수 있게 해주는 별도의 장치를 필요로 한다. 이 매커니므의 기초는 오랫동안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진자 법칙Pendelgesetze이었다. 이 법칙을 토대로 크리스티안 호이겐스Christian Huygens는 1656년에 최초의 진자시계Pendeluhr를 제작한다.26 그의 이론적 근거는 다음과 같은 공식이었다:
여기서 T는 진자의 주기(앞뒤 한 번 왕복하는데 걸리는 시간), L은 진자의 길이, g는 중력가속도이다. 이 식에 따르면, 진자의 길이가 약 1미터일 때 주기는 정확히 2초가 된다. 그 결과, 1초 단위로 똑딱거리는 천문용 진자시계astronomische Pendelhuhren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27
천문용 진자시계가 초 단위로 작동하기 때문에, 원래 별 통과 관측의 최대 시간 해상도는 1초 수준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러나 제임스 브래들리는 훨씬 더 높은 정확도를 가능케 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그가 고안한 눈-귀 방법Auge-Ohr-Methode에서는, 천문학자가 별이 기기의 수직 실 중 하나에 접근할 때 진자시계의 ‘틱’소리에 집중한다. 그 후 천문학자는 마지막 ‘틱’과 첫 번째 ‘틱’ 사이에서 별과 실의 상대적 위치를 관찰한 뒤, 이를 바탕으로 별이 정확히 실을 통과한 시점을 보간interpolieren하여 0.1초 단위까지 정밀하게 산출한다. 이러한 측정은 기구에 설치된 각 실마다 반복적으로 수행되며, 마지막에는 그 결과가 평균값으로 산출된다.28
이 방법은 처음 보기에는 시각과 청각의 서로 다른 특성을 활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시각은 공간적 해상력이 청각보다 훨씬 높고, 반대로 청각은 시각보다 시간적 해상력이 뛰어나다. 따라서 눈으로 거리를 관찰하고 귀로 시간을 감지하는 방식은 인간 감각 체계의 특성과 가장 잘 들어맞는 관측법이라 할 수 있다.
눈-귀-방법을 이용한 별 통과 관측은 그 당시 천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관측 절차였다. 천문대장의 조수는 이 작업에 전체 근무 시간의 약 80%, 다시 말해 대부분의 밤 시간을 쏟아야 했다.29 메이슨과 딕슨이 미국에 머물던 시기에30 다섯 번째 천문대장으로 임명된 마스켈라인Maskelyne은 조수들에게 매우 가혹한 요구를 내렸다. 조수들은 매일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관측에 상시 대기해야 했고, 필요하다면 한밤중에도 일어나 특이 현상들을 관측해야 했으며, 평일에는 회계 업무까지 맡아야 했다.31 이 때문에 조수들이 그리니치 천문대를 떠나는 일은 극히 드물었고, 마스켈라인은 그들이 다른 활동에 몰두하는 것조차 달가워하지 않았다. 천문대에서의 근무가 일부 조수들에게는 경력 도약의 발판이 되기도 했다. 예컨대 그곳을 거져 경도위원회Board of Longitude의 자리를 얻을 수도 있었다.32 그러나 그의 조수 가운데 명성을 얻은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는데, 그것도 업적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체계적인 실패로 인해서였다.
1794년부터 1796년까지 마스켈라인의 조수로 근무했던 데이비드 킨브룩David Kinnebrook은 별의 통과를 그의 상관보다 눈에 띄게 늦게 관측했다. 1796년에 이르면 그는 평균적으로 마스켈라인보다 약 800밀리초 뒤처졌다. 마스켈라인은 이를 킨브룩의 실수로 간주하고, 결국 그를 해고할 수밖에 없었다. 마스켈라인은 이 사건을 1799년자 Greenwich Observations에 기록했지만, 그 파장은 몇 년이 지나서야, 처음에는 천문학 내부에서, 그리고 이후에는 그 당시 새롭게 형성되던 실험심리학experimentelle Psychologie의 영역에서 드러났다.
그러나 천문학에 있어서 킨브룩 사건은 결코 충격적인 일도 아니었고, 심지어 사건으로조차 간주되지 않았다. 마스켈라인은 킨브룩이 눈-귀-방법을 사용한 방식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나는 내 옛조수가 이 뛰어난 관측법을 계속 사용했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 나는 그가 자신의 방식대로 불규칙하고 혼란스러운 방법을 사용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가 그런 심각한 오류들을 저지를 수 있었겠는가?"33
마스켈라인은 자신과 킨브룩의 관측 차이가 잘못된 방법의 사용에서 비롯된다고 보았으며, 이러한 차이가 관측 행위 자체의 본질에서 기인할 수 있다는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았다. 과학역사학자 크리스토프 호프만Chrostoph Hoffmann의 설명에 따르면 이는 당시의 일반적 관점과 일치한다. 다시 말해, 올바른 관측은 오직 올바른 방법의 문제로만 간주되었고, 방법론적 접근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인간 지각menschlichen Wahrnehmung의 비자발적 오류는 인정되지 않았다. 따라서 체계적인 오류systematischer Fehler가 발견될 경우, 그것은 관측 일반에 대한 불신이 아니라 특정 관측자의 방법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야 했다.34 그러나 마크켈라인이 킨브룩을 해고한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심리학자 존 몰론John Mollon과 애덤 퍼킨스Adam Perkins가 Nature에 발표한 글에 따르면, 킨브룩은 마스켈라인이 경쟁자로 여긴 천문학자 존 허셜John Hershel과 서신을 주고받고 있었다. 게다가 마스켈라인은 킨브룩을 친구의 딸과 결혼시키려 했는데, 킨브룩은 이를 거절한 지 불과 2주 만에 해고당했다.35
이 사건이 본격적으로 사례로 간주되는 것은 뒤늦게, 1822년 천문학자 프리드리히 빌헬름 베셀Friedrich Wilhelm Bessel이 자신과 다른 천문학자들 사이의 관측 시간 차이가 존재함을 기술하면서부터이다.36 25년 전과 달리, 이제 천문학계에서는 이러한 일정한 차이constante Unterschiede37가 논의되며, 킨브룩의 해고 사건도 새로운 관점에서 재조명된다. 킨브룩 사건의 재평가를 가능하게 한 전제는 두 가지이다. 첫째, 베셀은 각각 동등하게 방법론적으로 숙련되어 신뢰할 수 있는 관측자로 여겨지는 개인들 사이에서도 차이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둘째, 그리고 아마도 더 중요한 점은, 그 사이에 확률론Wahrscheinlichkeitsrechnung을 통해 체계적 오류를 다룰 수 있는 도구들이 개발되었다는 것이다.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Carl Friedrich Gauss는 베셀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러한 배경에서 이제는 확률 한계를 벗어난 작은 오류에도 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설명한다. 가우스는 이러한 오류에는 "반드시 물리적 원인이 있다"고 보았다.38 이에 따라 일정한 차이는 과학적 연구의 대상으로 자리 잡게 되었으며, 천문학적 논의에서 특정 관측자가 잘못된 방법을 사용한 것 이상으로 의미 있는 현상으로 인식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관점의 전환과 함께, 행동하는 관측자observer in action39도 망원경이나 시계처럼 하나의 도구로 간주되기 시작하며, 오류를 가질 수 있는 존재로 인식된다. 가우스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 ‘일정한 오류constant error’는 해시계chronometer의 오류와 유사하며, 마찬가지로 일정한 변동 한계certain limits of variation 내에서 결정될 수 있으며 보정될 수 있다.”40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지위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차이는 천문학, 특히 측지 천문학의 근본을 흔들지는 않는다. 별의 통과 관측이 가지는 재귀적 성격, 다시 말해 별의 절대적인 통과 시각보다는 두 지역시간 간의 상대적 차이를 측정한다는 특성 때문에, 단 한 명의 관측자가 지구 표면의 한 장소에서 모든 측정을 수행할 경우, 시간 결정과 통과 관측에서 발생하는 관측 오류가 정확히 상쇄된다.41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니치 천문대와 같이 여러 관측자가 동시에 작업하는 장소에서는 일정한 차이의 존재가 문제를 야기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관측 결과에 각 관측자의 이니셜을 표시하고, 관측자 간의 차이를 쌍으로 계산하여 개인 오류persönliche Gleichung로 명시하는 관행이 자리 잡았다.42 이러한 개인 오류는 오류를 보정하기 위한 수학적 통제 방법으로 활용되어, 천문 관측의 네트워크 내에 통합된다.
이후 몇 년 동안, 관측자가 훈련을 통해 현상의 원인 중 통제 가능한 부분을 관리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엄격하게 규율하도록 만드는 다양한 방법과 장치가 개발되었다. 이 기술적 발전의 목표는 무엇보다 인간 관측자의 역할을 점진적으로 최소화하는 데 있었다. 1889년, 개인 오류에 대응하여 비개인적 마이크로미터unpersönliches Mikrometer가 도입되었다. 이 반자동 기기는 관측자가 별의 겉보기 운동을 수동으로 추적하면, 통과 시각을 전기기계적으로 기록하는 장치였다.43 그 후 관측자는 결국 완전히 제거되었다. 제니트 카메라Zenitkamera가 천체의 겉보기 운동을 완전한 자동 방식으로 기록하게 되었고, 이후 전자 CCD 시스템이 이 역할을 이어받았다. 오늘날까지 지구측량 천문학에서 별 관측의 탈인간화는 더욱 급진적으로 진행되었다. 전 지구적 위치결정 위성 시스템Global Navigation Satellite Systems, GNSS과 같은 시스템, 예를 들어 GPS는 장치와 관측으로 이루어진 기존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기계 기반 시스템으로 대체하였다. 이 과정에서 관측자뿐만 아니라 천체 역시 인공 위성으로 대체되어, 겉보기 운동의 위치가 실제 궤도로 변환되었다. 이러한 인공 위치 결정 시스템도 여전히 시간에 의존하지만, 이제 전파 신호의 도달 시간 차만이 결정적인 차이 요소이며, 이 참조 기준은 인공 위성 내부에 설치된 원자시계로부터 제공된다.44
개인 오차를 천문 관측 실무에 실용적으로 도입함으로써, 동시에 이 문제를 과학적 인식 속에 유지시키는 일종의 “기억 메커니즘”45도 이와 함께 형성된다. 이 메커니즘은 19세기 후반 실험심리학에서 논의될 때까지 중요하게 다뤄진다.
1.2 운동 현상BEWEGUNSERSCHEINUNG
1873년부터 빈 출신의 심리학자 지그문트 엑스너Sigmund Exner Ritter von Ewarten는 여러 논문을 통해 자신의 연구 「Experimentelle Untersuchung der einfachsten psychischen Processe」(가장 단순한 심리적 과정에 대한 실험적 연구)를 발표한다. 그는 첫 번째 논문46을 「Die persönliche Gleichung」(개인 오차)라는 소제목으로 시작하면서 연구 동기를 밝힌다. 헬름홀츠Hermann von Helmholtz를 비롯한 연구자들이 신경의 자극 전달 속도가 온도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보여준 실험들은 엑스너로 하여금 “활발하고 젊은 사람들과 굼뜨고 노쇠한 사람들 사이에서 볼 수 있는 운동 속도와 정확성의 큰 차이는, 신경 전달 속도의 차이와 연관되어 있을지도 모른다”47는 생각에 이르게 했다. 그러나 팔의 정중신경Nervus Medianus에서 각 개인의 신경 전달 속도를 측정해 이 가설을 입증하려 한 실험은 아무런 결과도 내지 못했다. 엑스너는 이 실패에 대해 “이로 인해 낙담하여 나는 그 문제를 포기했다”고 기록한다.48
활발하고 젊은 사람과 굼뜨고 노쇠한 사람 사이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생리학적 근거를 찾고자 했던 엑스너는 팔의 말초Peripherie에서 벗어나 심리적 과정psychische Processe의 중심으로 관심을 옮긴다. 그는 먼저 인간 지각에 대한 실험적 조사를 시도한다. 그리고 엑스너는 이러한 조사가 “본질적으로 개인오차persönliche Gleichung에 대한 문제와 동일하다”49고 설명한다. 다만 이 문제는 지금까지 “접근하기 어려운 천문학 및 물리학 학술지에 흩어져 있었으므로” 생리학Physiologie 안에서 우선 도입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50
이어서 엑스너는 개인오차persönliche Gleichung의 문제를 소개하면서 그 발견을 곧바로 베셀Bessel의 업적으로 돌린다. 사실 베셀은 여전히 항구적인 차이constante Unterschiede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엑스너는 그 발견의 계기를 베셀이 킨브룩의 사례에 주목한 데서 찾는다.51 이로써 엑스너는 마스켈라인과 킨브룩 사이의 관측 차이와 베셀에서 드러난 항구적 차이를, 원래 그러한 차이를 다루던 천문학 내에서의 활동을 가리키던 ‘개인 오차’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묶는 축약된 서사를 구성한다. 이와 유사한 사례로는 오늘날까지 실험심리학Experimentalpsychologie의 창시자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빌헬름 분트의 경우가 있는데, 그도 이미 1869년대에 이 개인 오차를 참조하였다.52 엑스너는 분트에 직접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실험심리학을 천문학의 연속으로 구성하는 이러한 목적론적 서사를 재현한다. 그리고 이 서사는 오늘날까지도 심리학의 역사에서 표준적 설명으로 자리 잡고 있다.53 다시 말해, “역사가들은 킨브룩의 해고를 실험 심리학의 탄생을 가져온 사건으로 간주해왔다.”54
당대의 과학이론은 한편으로는 과학의 기능과 전개를 역사기술적으로 탐구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점차 실험실 내에서 수행되는 실제 실험 활동과 실험 장치들의 상호 얽힘에 주목한다.55 이 관점에 따르면 과학은 실험 체계Experimentalsysteme에 의해 형성되는데, 이러한 체계는 과학적 연구를 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무엇이 인식적 사물epistemische Dinge로서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를 동시에 규정한다. 따라서 사용된 실험 체계들의 역사를 추적하는 서술은, 1860년대에 천문학자 아돌프 히르슈Adolph Hirsch가 인간의 반응 시간을 측정하기 위해 고안한 실험 장치를 천문학과 심리학 사이를 잇는 연결 고리로 파악하게 된다.56
오늘날의 표준적인 서술에 이르기까지, 킨브룩 사건은 여러 차례 새롭게 해석되어 왔다. 마스켈라인에게는 그러한 오류가 어디까지나 잘못된 관찰 방법의 문제로 보였지만, 베셀에게는 확률 계산이라는 새로운 도구를 거치면서 그것이 관찰자를 하나의 계기로 간주했을 때 나타나는 오류성의 문제로 바뀌었다. 이후 ‘개인 오차’는 다른 측정 오류 수정 절차들과 함께 천문학적 실천 속에 도입된다. 한 세기 이상이 흐른 뒤, 이 사건은 분트와 엑스너 같은 심리학자들에 의해 심리학의 문제로 다시 해석되어, 자신들의 연구를 정당화하는 계기이자 실험심리학을 탄생시키는 사건으로 설명되었다. 이후, 아돌프 히르슈의 실험을 거쳐 이 사건은 더욱 축약된 형태로, 결국 인간 반응 시간의 문제로 환원된다.57
‘개인 오차’는 결코 반응 시간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천체의 통과 관측에서는 관측 자체가 당시 이용 가능한 가장 정확한 시간을 산출하는 한, 관측 오차를 올바른 시간에서의 편차로 간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마스켈라인이나 베셀 시기의 개인오차는 관찰자 간의 차이, 다시 말해 크고 작음은 있어도 일정하게 유지되는 편차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는다. 따라서 개인적 방정식이 심리학의 출발점으로 자리 잡은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크로노스코프chronoskop와 타키스토스코프Tachistoskop 같은 실험 체계가 형성되어, 반응 시간을 측정하고 자극 제시 시간을 조작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나타났기 때문이다.58 실험심리학의 출발점은 천문학이 인간 인식의 한계를 문제화한 사실이 아니라, 오히려 이러한 실험 체계를 구현함으로써 반응 시간을 연구 대상(혹은 인식적 사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었다. 엑스너와 분트는 이로써,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천문학보다는 헬름홀츠가 수행한 신경 전도 속도 측정 실험에 훨씬 직접적으로 연결된다.59
현대 심리학에서 킨브룩의 사건은 여전히 학문적 기원으로 인용되지만, 현재에는 이 사건이 인간의 반응 시산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마스켈라인과 킨브룩의 관측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현대 실험심리학은 키네브룩의 오류가 다중 감각multimodale 지각의 상호작용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결론짓는다. 실제로 킨브룩의 관측에는 체계적인 오류가 나타난다. 그는 0.1초 단위로 시간을 추정하면서, 반복적으로 정확히 1초 단위로 편향되는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편향은 언어 지각에서 관찰되는 현상을 연상시킨다. 다시 말해, 청자는 대화 중 말의 경계에서 들리는 작은 톡 소리Klicken를 두 문장 사이의 휴지에서 발생한 것으로 지각하는 현상이 있듯이, 킨브룩 역시 진자 시계의 틱 소리를 그것이 청각적으로 양분되는 순간에 들었다고 볼 수 있다.60 처음에는 시각과 청각을 결합한 눈-귀-방법이 장점으로 여겨지지만, 실제로 서로 다른 감각 양식의 결합은 단순히 각 감각의 특성으로부터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엑스너는 개인 오차의 문제를 단순히 반응 시간의 문제로 보지 않았다. 그는 신경 전도 속도 연구에도 관심을 가졌지만, 그의 논문 세 번째 부분은 실제로 눈-귀-방법 수행에서 요구되는 능력, 즉 감각 자극을 공간적·시간적으로 구분하는 능력에 초점을 맞춘다.61
이 연구의 출발점은 헬름홀츠의 전자기 회전 장치elektromagnetischer Rotationsapparat로, 다시 말해 전동기Elektromotor다. 이 장치는 수평으로 놓인 원판을 회전시키고, 원판 아래에는 두 개의 금속 막대가 ‘시계 바늘처럼’ 배치되어 있다. 각 금속 막대 끝은 90°로 구부러져 있어, 한 바퀴 회전할 때마다 적절한 위치에 놓인 수은Mercury 용기에 담기도록 설계되어 있다. 금속 막대와 수은 용기는 전류가 흐르는 상태이며, 막대가 용기와 접촉하는 순간 스파크가 발생한다. 용기의 위치는 스파크 사이의 공간적 간격을, 금속 막대 사이의 각도는 시간적 간격을 제어한다.62
엑스너는 자신이 구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적 차이를 측정한 뒤, 조건을 바꿔가며 실험을 반복했다. 그는 더 멀리 떨어진 지점에서 관찰을 시도했는데, 이 경우 두 스파크 사이의 겉보기 거리가 줄어들었다. 놀랍게도 이로 인해 구분 가능한 최소 시간 차이 역시 작아졌으며, 다시 말해 시각의 시간 해상도가 공간적 간격이 좁아질수록 향상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 원인은 이전까지 기술되지 않았던 현상에 있었다. 다시 말해, 두 스파크가 서로 가까워질수록 관찰자는 이를 두 개의 독립된 섬광으로 보기보다는 움직이는 하나의 스파크로 지각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때 움직임의 시작과 끝은 곧바로 ‘앞과 뒤’라는 시간적 순서를 담고 있으며, 덕분에 관찰자는 두 스파크 사이의 시간 차이를 더욱 쉽게 감지할 수 있었다.
엑스너에게 이 현상은 겉보기 움직임, 곧 가상적 운동에 해당하며, 지각의 한계를 탐구하는 실험에서는 이러한 효과의 개입을 피해야 한다.63 논문의 서두에서 그는 아직 겉보기 운동을 천문학에서의 관찰자 위치에 따른 상대적 움직임이라는 맥락으로 언급했지만, 여기서는 더 이상 그러한 의미가 아니다. 이제 겉보기scheinbar라는 표현은 관찰자 위치에 따른 상대성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falschen, 실재하지 않는unwirklichen, 실제로 존재하지 않음에도 실재하는 것처럼 지각되는vorgetäuschten64 움직임을 가리키게 된다. 그러나 이 새로운 유형의 겉보기 운동이 실험에 개입하지 않도록 막는 일은 극도로 어렵다. 엑스너는 비록 그것의 영향을 자신의 측정에서 배제하기 위해 이 현상을 살펴보았을 뿐이지만, 논문 말미에서는 결국 이 현상 자체를 주제로 삼아 논의를 펼친다.
언급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는 점이 있다. [...] 움직임으로 지각하려는 경향은 워낙 강해서, 두 시각적 인상이 시야에서 서로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여전히 단일한 움직임의 시작점과 끝점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 심지어 한 실험에서는, 전기 충격이 먼저 왼손에 가해지고 이어서 관찰자의 반대편에서 불꽃이 튀는 경우조차, 사람은 그것을 번쩍하는 움직임blitzartige Bewegung으로 느끼려는 경향을 보인다. [...] 마치 우리가 시간적 차이를 인식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그것을 움직임으로 환원해 해석하도록 강제되는 것과 같다. 이는 예컨대 우리가 실제로 망막 자극을 언제나 공간적 사건으로 파악할 수밖에 없는 것과 비슷하다.65
그러나 이러한 겉보기 운동이 엑스너의 추측을 넘어서 하나의 인식적 대상epistemisches Ding의 지위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먼저 심리학에서 지각 착오Wahrnehmungstäuschungen가 차지하는 역할이 달라져야 한다.

그림 2. 슈만이 고안한 타키스토스코프. 출처: Spindler & Hoyer, Apparate für psychologische Untersuchungen. Preisliste, 괴팅겐, 1908, p.168.
1.2.1 순수한 움직임 현상Reine Bewegungserscheinung
막스 베르트하이머의 텍스트「운동 지각에 관한 실험적 연구」66는 게슈탈트심리학의 기초 문헌 가운데 하나로 여겨진다.67 이 연구의 근본 문제는 베르트하이머에게 있어 운동을 지각하는 경험이다. 이 경험을 탐구하는 데 있어 겉보기 운동은 중심적인 역할을 차지한다. 그러나 베르트하이머는 겉보기 운동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 결정을, 이미 “착시 연구가 달라진 학문적 분위기 속에서in a climate in which the study of illusions had changed”68 여전히 길게 정당화해야 했다. 운동 지각의 본질을 언급하며 그는 다음과 같이 쓴다. “운동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가려 한다면, ‘겉보기 운동’에서 출발하는 것이야말로 잘못된 시도가 되지 않을까?” 물론 이 수사적 질문은 부정될 수밖에 없다. 베르트하이머에 따르면, 바로 이 겉보기 운동을 다루는 것, 다시 말해 “기술적으로 가장 단순한 조건들”로 환원하는 것이, 오히려 “실제적으로, 생생하게 주어진 운동 지각”의 구성적 요소들을 분리해 내고, 그로부터 “이론적 결정을 위한 실험적 토대”를 확보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69
이로써 겉보기 운동은 더 이상 탐구해야 할 대상의 경계로 머무르지 않고, 오히려 연구 자체의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러한 전환은 무엇보다도 방법론적 이유에 기인한다. 이미 엑스너의 ‘겉보기 운동 발견’에서도 기반을 다졌던 원동기 같은 기술적 장치들이, 겉보기 운동을 정밀하게 통제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베르트하이머는 그의 실험 연구를 통해 겉보기 운동의 역할을 전도시키는 동시에, 기술적으로는 이를 엑스너의 작업과 직접적으로 결부했다. 기술적 통제 덕분에 베르트하이머는 자극의 종류와 자극이 나타나는 시간, 그리고 그 사이의 간격을 변수 a, b, t로 설정하고 체계적인 변화를 가할 수 있었다. 이 경우에도 연구 대상은 그의 실험 체계와 긴밀하게 얽혀 있다. 겉보기 운동은 이렇게 해서 “실험심리학적 지식의 대상으로서, 스트로보스코프Stroboskop와 활동사진기Kinematograph라는 장치를 통해 관찰되고, 동시에 이 장치들에 의해 그 관찰 방식과 해석 방식이 규정되는 스트로보스코프적 현상”으로 나타나게 된다.70

그림 3: 전형적인 자극 a와 b, 그리고 이들 사이의 겉보기 움직임 (Max Wertheimer, »Experimentelle Studien über das Sehen von Bewegung«, Zeitschrift für Psychologie und Physiologie der Sinnesorgane 61 (1912), S. 161–265, S. 264)
구체적으로, 베르트하이머는 그림 2에 보인 슈만Schumann의 타치스토스코프Tachistoskop를 스트로보스코프Stroboskop로 사용하였다. 이 회전식 타치스토스코프Rotationstachistoskop는 바깥쪽 링이 8개의 위치로 이동 가능하도록 되어 있어, 그 뒤에 있는 대상물을 일정 순간 동안 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베르트하이머는 자극 a와 b로 주로 서로 평행한 두 선이나, 각을 이루는 선을 사용하였다(그림 3). 프리즘과 타치스토스코프의 개구 슬롯을 적절히 배치하면 a와 b가 번갈아 나타나도록 할 수 있다. 간격 t는 회전 속도와 개구 슬롯의 길이에 의해 결정된다.71 따라서 a, t, b는 일종의 영화처럼 나타나며, 두 자극과 그 사이의 간격이 리듬감 있게 깜박이는 연속으로 지각된다.
연속된 자극 a, t, b의 제시에 의해 주관적으로 형성되는 “심리적 사실”(psychische Sachverhalt)로서의 움직임 인상Bewegungseindruck, 즉 “a와 b의 지각 외에 존재하는 것, a와 b 사이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것, a와 b에 더해지는 것”을 베르트하이머는 ϕ라고 명명했다.72 이렇게 장황하게 도입된 ϕ는 이후 실험적 연구의 중심이자 목표가 된다. 그의 논증은 주로 두 가지 명제를 구축하는 데 기반을 두고 있는데, 이 명제들은 베르트하이머에게 당시 모든 움직임 지각 이론의 공통 분모를 나타낸다.
I. ϕ는 a와 b 모두와 관련되며, 이 위에 구축되고, 두 자극을 모두 포괄하며 연결하는 것이다. II. ϕ의 현상적 내용phenomenale Inhalt은 주관적 보충subjektive Ergänzung에 의해 형성되며, 객관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공간적·시간적 연속intervallartige 중간 상태를 포함한다.73
이 두 가지 명제Thesen의 기능은 무엇보다 공격점Angriffsfläche 역할을 하는 것이다. Wertheimer는 이렇게 설명한다: “그러나 자극a, ϕ, b의 현상적 관찰은 다른 방향을 가리켰다. 연구가 진행되면서 점점 분명해진 것은, 여기에는 강렬하게 주어진 특정한 요소가 존재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이는 단계적으로 a, ϕ, b의 절대적 연쇄absoluten Verkettung에 도전하는 실험으로 이어졌다.”74
a, t, b 순서의 지각perzeptuelle Folge에 대해 Wertheimer는 세 가지 기본 단계Stadien를 구분한다. Simultanruhe(동시정지): a와 b가 동시에 보이는 상태. t가 큰 경우, Sukzessivruhe(연속정지): 움직임이 아니라 a와 b가 각각 고정되어 있는 것으로 지각되는 상태. t가 적절히 작을 때, 최적의 움직임Impression optimaler Bewegung의 지각이 발생한다.75
a, ϕ, b의 절대적 연쇄absoluten Verkettung를 흔들어보는 실험에서, 베르트하이머는 우선 몇 가지 실험적 구성요소experimentelle Bausteine를 제시한다. 이를 통해 다음을 확인할 수 있다. 움직임의 지각은 a와 b의 잔상Nachbilder이나, a에서 b로의 주의 이동, 혹은 눈의 움직임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76 무엇보다도, a와 b가 하나로 연결되어 움직이는 것이라는 역할 자체가 일반적으로 의문시될 수 있다는 근거를 제공한다. 이를 위해 그는 실험의 초점을 기존의 세 가지 기본 단계Stadien에 속하지 않고, 이전에는 단순히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움직임”으로 치부되던 중간 현상Zwischenphänomene으로 옮긴다.77 최적의 움직임 상태에서 t를 늘리면, 여전히 움직임의 인상은 존재하지만, 이는 a에서 b로 이어지는 일관된 움직임과는 다르다. 오히려 부분적 움직임Teilbewegungen으로 현상적으로 분해된다(그림 4).78 a와 b 사이에서는 각각 전체 중 일부 영역만이 움직이는 두 개의 불완전한 움직임이 나타난다. 따라서 ϕ는 반드시 두 객체(a와 b)를 모두 포함하는 전체가 아니다. 또한 a = b라는 동일성 인식과도 결부되지 않는다. a와 b가 서로 다르게 지각되더라도 움직임의 인상은 발생할 수 있다.79 심지어, a ϕ b라는 겉보기 움직임은 시야 내의 제3 객체 c를 겉보기 움직임으로 만들거나, 두 번째 움직임 c ϕ d의 인상을 강화할 수도 있다.80
마지막으로 베르트하이머는 ϕ라는 현상이 a와 b 사이 중간 단계의 지각을 보간하여 보충interpolierende Ergänzung한 데 기반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먼저, 실험 참여자들은 움직임의 인상을 보고할 때 반드시 b를 의식적으로 지각했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관찰한다. 더 나아가, 베르트하이머는 b를 전혀 제시하지 않아도 움직임의 인상을 유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a와 b의 연속적 제시 과정에서, 짧은 휴지 동안 b를 실험 조건에서 제거하기도 한다. 그 뒤 깜빡이는 a를 다시 제시해도 움직임의 인상은 그대로 남는다.81 이는 이전의 자극 노출로 인해 움직임 인상이 사전 성향prädisponiert을 가지게 됨을 시사한다.82 뿐만 아니라, a와 b 사이의 움직임 인상은 중간 단계가 의식적으로 지각되지 않아도, 심지어 a와 b 사이에 움직임과 관련 없는 다른 객체가 존재해도 여전히 나타난다.83

그림 4: 중간 단계에서 부분적 움직임으로 분해되는 현상 (Max Wertheimer, »Experimentelle Studien über das Sehen von Bewegung«, Zeitschrift für Psychologie und Physiologie der Sinnesorgane 61 [1912], S. 161–265, S. 192–193)
다시 말해, 움직임은 반드시 실제로 움직이는 대상이 존재해야 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는 마치 실제 움직임에 관여하지 않는 객체까지도 포함하는 “순수한 움직임이 나타나는reine Bewegungserscheinung”84 현상이 있는 듯하게 보이도록 한다. 따라서 연구의 중심은 더 이상 a와 b가 아니라, 순수한 ϕ의 고립에 있다. 이 순수한 ϕ는 움직이는 대상이 아니며, 심지어는 a와 b의 색조차 지니지 않는다.85 이 순간에는 오히려 시야 자체가 움직이는 듯한 현상이 나타난다. 순수한 움직임의 현상은 일종의 움직이지 않는 전경Figur이 아니라 움직이는 배경Hintergrund과 같은 역할을 한다.86
순수한 움직임을 고립시킴으로써 베르트하이머는 이제 움직임 지각 경험Bewegungssehen에 대한 생리학적 설명87을 제시할 수 있게 된다. 이 설명은 객체 지각과 그 움직임 사이의 관계를 완전히 뒤집는다. 그는, 움직임의 인상은 시야의 먼저 자극받은 영역 a에서 이후 자극받는 영역 b로 이어지는 “방향성 단락gerichteter Kurzschluss”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 모델에 따르면 시야의 어떤 자극도 이러한 단락을 일으킬 수 있는 준비 상태를 만들고, 다음 자극이 단락을 발동시킨다. 따라서 시간적으로 너무 떨어져 있어 단락이 일어나지 않는 두 자극이 부분적 움직임Teilbewegungen의 인상을 만들어내는 것도 설명된다. 또한 자극이 시간에 따라 누적되고, 자극이 끝난 후에도 효과가 지속된다고 가정하면, 이전에 움직임을 지각한 경험이 이후 움직임 지각을 미리 준비하는 현상Prädisposition도 이해할 수 있다. 순수한 움직임의 현상은, 부분적 움직임, 제3 객체의 동시 움직임, 혹은 이러한 준비 상태에 의한 움직임 지각에서 관찰되며, 이렇게 생기는 현상은 결국 “생리학적 상관physiologisches Korrelat”을 갖게 된다. 시야 일부에서 나타나는 순수한 움직임의 인상은, 방향성 단락을 일으킬 준비가 된 영역들의 현상적 대응일 뿐이다.
이에 따르면, 공간적으로 분리된 두 자극 a와 b로부터 연결된 하나의 형태Gestalt를 지각하는 것—가령 a와 b가 정지한 각을 이루는 동시적 정지Simultanruhe 상태—는 움직임 지각Bewegungssehen의 특수한 사례가 된다. 만약 a에서 b로, 그리고 동시에 b에서 a로의 '단락Kurzschlüsse'이 가능하다면, 형태 지각은 '개별적인 생리적 흥분 상태들로부터 하나의 전체로서 귀결되는 통일된 과정'으로 생겨나며, a와 b는 '하나 안의 둘duo in uno'로 나타난다. 이러한 설명에서 움직임ϕ의 지각은 형태 지각에 앞선다. 후자(형태 지각)는 일종의 '동시적 파이 기능Simultan-ϕ-Funktion'으로서 움직임 지각의 특수한 경우인 셈이다.88 그리하여 게슈탈트Gestalt는 '질주하는 정지rasenden Stillstand'가 된다.89
베르트하이머가 말하는 '단락Kurzschlüsse' 현상은 일종의 "횡단 및 전체 과정Quer- und Gesamtvorgänge"90을 형성한다. 이는 시야視野에서 움직이는 것으로 보이는 부분들을 서로 관계 맺게 하고, 유리한 조건 하에서는 순수한 움직임 현상reine Bewegungserscheinung을 a에서 b로 향하는 방향성 있는 움직임a ϕ b이라는 지각으로 변환시킨다는 점에서 비국소적nicht-lokal이다. 움직임 인상Bewegungseindruck이 이처럼 포괄적으로 구성된다는 이 모델은, "움직임 인상이 전적으로 자극 기반Reizgrundlage에 의해서만 구성된다는 기존의 자명한 가정"에 문제를 제기한다.91 오늘날의 관점에서 이 설명의 생리학적 타당성에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지만92, 베르트하이머의 접근은 게슈탈트 심리학의 논증 방식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게슈탈트 심리학은 단순히 자극(a와 b)을 먼저 가정하고 그 결과로 감각 인상(그것들의 ϕ)이 뒤따라온다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자극의 속성 자체를 구조적인 전체 맥락strukturellen Gesamtzusammenhang의 산물로 파악한다. 이 모델에 따르면 a와 b가 ϕ를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ϕ가 a와 b를 비로소 그것 자체, 즉 하나의 움직임의 '정거장들'로 만들어 준다. 베르트하이머의 말을 빌리자면:
게슈탈트 이론의 근본 문제를 다음과 같이 정식화해 볼 수 있다: 세상에는 전체Ganzen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개별 조각einzelnen Stücke들이 어떠하고 또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로부터 도출되지 않는 관계들이 존재한다. 오히려 그 반대로, 명확한 경우에 한해서는, 이 전체의 한 부분에서 일어나는 일이 바로 그 전체의 내적 구조 법칙inneren Strukturgesetzen에 의해 규정된다.93
1.2.2 모호한 움직임
모든 모서리가 보이도록 2차원으로 표현된 3차원 정육면체의 윤곽선을 본다면, 지각은 모호해진다. 즉, 정육면체의 앞면과 뒷면이 역할을 바꾸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일종의 "반전 도형Kippfigur"이다. 1832년 루이 알베르 네커Luis Albert Necker가 이에 대해 처음 보고했기 때문에, 이러한 정육면체는 오늘날까지 "네커 정육면체Necker-Würfel"로 알려져 있다.94
심리학에서는 감각 인상, 즉 베르트하이머가 말한 지각 시 "강렬하게 주어지는 것"을 전통적으로 "퍼셉트Perzept"라고 칭한다. 그리고 네커 정육면체에 대한 지각은 두 개의 안정적인 퍼셉트를 가지므로, 이러한 반전 도형의 경우를 이중 안정 지각bistabile Wahrnehmung이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모호한 현상들은 다중 안정 지각multistabilen Wahrnehmung이라는 표제 하에 다루어진다. 다중 안정 지각 또는 모호한 지각이 심리학에서 흥미로운 이유는, 여기서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자극이 그것이 야기하는 주관적으로 경험된 퍼셉트와 분리되기 때문이다. "다중 안정 자극은 시각적 인식의 신경학적 기반을 연구하는 데 매우 귀중한 도구이다. 왜냐하면 이를 통해 우리는 기본적인 감각 특징과 상관관계가 있는 신경 반응을 지각과 상관관계가 있는 신경 반응과 구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95 자극은 변하지 않은 채로 남아있는 반면, 퍼셉트는 안정적인 상태들 사이를 비자발적으로96 왔다 갔다 하며 전환되는데, 이때 각각의 상태는 그 자체로 배타적이고 명확하다. 즉, 정육면체의 가능한 두 앞면을 동시에 앞으로 보는 경우는 결코 없다. 지각은 모호한(또는 애매한, ambige) 자극의 "모호성을 해소하여disambiguiert" 명확한 퍼셉트로 만든다.

그림 5: 링케에 따른 모호한 움직임
엑스너에게는 피해야 할 착각이었고 베르트하이머에게는 정확히 통제 가능한 실험 시스템이었던 겉보기 운동은, 이러한 종류의 현상에서도 그 기반이 된다. 이미 1907년에 파울 링케Paul Linke는 한 실험에 대해 보고한다. 그는 분트Wundt의 제자이자, 움직임 인상 ϕ가 a와 b의 동일성을 가정하는 것의 결과라는 이론의 대표자 중 한 사람이었다.97 이 실험에서는 자극 a와 b로 각각 십자가가 사용되는데, b의 위치는 a에 비해 45° 회전되어 있어 그 회전 방향이 모호하다(그림 5). "순전히 기하학적으로 시계 방향 또는 그 반대 방향으로의 회전이 일어날 수 있었다"98라고 파울 폰 쉴러Paul von Schiller는 1933년에 오늘날 '모호한 겉보기 운동' 또는 줄여서 '모호한 움직임'으로 불리는 상황을 묘사한다. 이 현상은 처음에는 어떠한 법칙도 따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링케는 두 십자가가 서로 45° 기울어져 있을 때 아무런 규칙성이 존재하지 않음을 발견했다."99 네커 정육면체처럼 이 자극 또한 이중 안정적bistabil이다. 두 십자가를 스트로보스코프 애니메이션으로 반복해서 보면, 지각된 움직임의 방향은 두 가능성 사이를 전환한다.
실험 연구의 목표가 움직임 인상의 발생 자체를 이해하는 것이었던 베르트하이머와는 달리, 폰 쉴러는 법칙성을 규정하는 것이 자신의 관심사임을 분명히 한다. 스트로보스코프 실험에서 두 가지 움직임이 가능하다면, 대안 중 하나의 탈락은 어떤 법칙을 따라야만 한다. 왜냐하면 모든 다중 안정 현상에서처럼, 여기서도 주관적으로는 실제로 항상 대안 중 하나만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시계 방향 혹은 그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는 것처럼 보인다. 즉 모든 반전 도형처럼, 모호한 겉보기 운동 또한 배타적exklusiv이다. "링케의 양자택일 실험은 스트로보스코프적 대안의 선택이 주관적이며 아무런 법칙성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라고 폰 쉴러는 기술한다. 이러한 '임의성 이론Beliebigkeitstheorie'에 그는 '엄격한strengen'100 법칙을 찾으려는 시도를 대치시키며 다음과 같이 묻는다. "무엇이 스트로보스코프적 움직임 대안의 선택을 결정하는가?"101

그림 6: 폰 쉴러의 자극 및 그것과 동일한 확률로 나타나는 퍼셉트의 예시: 시계 방향 또는 반시계 방향으로의 움직임
이 탐구는 여러 지점에서 베르트하이머의 연구와 연결되며, 그 결과는 a와 b의 형태, 색상 또는 시작 위치가 지각된 움직임의 형태 및 방향과 맺는 관계에 대한 포괄적인 연구이다. 이 연구는 질적 분석을 통해, 이미 베르트하이머의 연구가 그랬듯이, 당대 실험 심리학의 수많은 양적 연구 결과들을 선취한다.102 그러나 주의력의 영향을 조사하던 중 폰 쉴러는 주목할 만한 한 관찰을 언급하는데, 이는 비록 그에게서는 더 주목받지 못했지만 오늘날의 연구와 이 논문의 맥락에서는 매우 중요함이 드러날 것이다. 그는 자신의 피험자(텍스트에서는 "Vpn."으로 표기됨)에게 지각의 전환을 의도적으로 유도하면서 특정 회전 방향을 선호하도록 지시했을 때 다음과 같은 점을 관찰한다.
지각을 전환시키는 것은, 새로운 해석을 시각적으로 상상했을 때가 아니라 그것을 운동감각적으로motorisch 경험하고자 시도했을 때 가장 성공적이었다. [...] 나는 심지어 연속 실험 사이의 짧은 휴식 시간에 머리나, 드물게는 팔 또는 몸통으로 신체 움직임을 수행하는 몇몇 피험자들을 관찰했는데, 이는 종종, 그러나 항상은 아니더라도, 원하는 결과로 이어졌다.103
그리고 그는 각주에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여기서 우리는 운동 과정motorische Vorgänge이 시각적 지각에 형성적 영향을 미치는 경우를 다루고 있다."104 폰 쉴러에게 이 관찰은 아직 심층적인 연구의 대상이 될 가치는 없다. 왜냐하면 그는 자극 제시의 매개변수는 정확하게 통제할 수 있는 반면, 운동 움직임은 그러한 통제 하에 둘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법칙성의 확립은 계산하기 어려운 몇몇 요인에 의해 방해받는다"105고 단정한다. 이러한 요인에는 그의 피험자들이 행하는 수의적 움직임Willkürbewegungen도 포함된다. 그러나 계산하기 어려운 요인들을 무시하기로 결정함으로써, 그는 운동 움직임과 움직임 지각 사이의 연관성을 체계적으로 연구할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하고 만다. 이는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실험 심리학에서 의문시되지 않을 결정이었다.
그러나 그의 관찰은 이미 여기서 '눈-귀 방법Auge-Ohr-Methode'에서처럼 단지 서로 다른 지각 양상modality의 연결만이 상호 영향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또한 우리는 단지 "가능한 모든 경우에 시간차를 움직임으로 파악하도록" 강제되는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 오히려 움직임 지각의 '전체'는 우리의 감각 체계Sensorik뿐만 아니라 우리의 운동 체계Motorik까지도 포함할 수 있다. 따라서 "행동 중인 관찰자observer in action"는 자신의 운동 움직임 또한 지각된 것에 통합하여, 비자발적이고 즉각적으로 자기 자신이 유효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지각하도록 강제될 수도 있다. 즉,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지각한다.
제2부
피드백/기계 (FEEDBACK/MASCHINEN)
사이버네틱스 (KYBERNETIK)
1920년대와 30년대의 정보통신 기술(Nachrichtentechnik, 역자 주: 현대 공학 분야에서는 정보통신 공학)과 제어 공학(Regelungstechnik, 역자 주: 자동 제어 시스템을 다루는 핵심 분야)은 서로 독립적으로 동일한 문제와 씨름하고 있었다. 전자 기계식 아날로그 계산기의 설계에서든 음성 언어용 증폭기 제작에서든, 변화하는 신호를 자동으로 추적하는 메커니즘이 필요했다. 두 분야에서 개발된 해결책은 피드백Feedback에 기반을 둔다. 이러한 발전의 결과로 정보통신 기술과 제어 공학에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난다. 피드백이라는 원리 하에, 이전에 분리되었던 두 분야는 하나의 "고전적" 제어 공학으로 통합된다. 이 새로운 학문은 운동, 전류, 또는 언어 대신 신호Signal와 정보Information의 언어로 이야기한다. 이 학문이 군사적 사격 통제(militärischer Feuerleitung, 역자 주: 군사학 및 방위 산업의 한 분야) 문제를 다루게 되면서, 마침내 기술 시스템의 인간 조작자 또한 피드백의 원리에 종속된다. 이로써 제어 공학이 보편적 과학으로 급진화될 준비가 갖추어지며, 노버트 위너Norbert Wiener는 이를 마침내 사이버네틱스라 명명하게 된다. 피드백은 인식론적 사물epistemisches Ding로서 오늘날까지 지속되는 인식론적 충격epistemische Erschütterung을 촉발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피드백을 통해 인간과 기계의 관계는 순환적zirkulär인 것으로 기술될 수 있게 되며, 이는 이 논문의 핵심적인 지점이 될 것이다.
2.1 일반화된 훈련 장치 (A GENERALIZED TRAINER)
실험 심리학의 피험자들이 정밀하게 제어되는 겉보기 운동을 관찰하던 거의 동시대에, 다른 한편에서는 전혀 다른 종류의,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기계 장치에 기반한 움직임에 몰두하고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은 비행을 전쟁의 향방을 가르는 핵심 기술로 바꾸어 놓았고, 이에 따라 지상의 시선은 하늘의 비행기로, 조종사의 시선은 계기판으로 점점 더 향하게 되었다. 특히, 실제 비행 상태를 나타내는 각종 수치를 그저 흉내 낼 뿐인 듯한 계기판들에 더욱 그러했다. 클라우스 피아스Claus Pias가 단언하듯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비행을 배운다는 것이 결국 '성공적인 비행' 아니면 '추락' 둘 중 하나를 의미했을 뿐이라면, 1920년대에는 실제 비행 상황이 배제된 훈련 방식이었기에 '계기비행(計器飛行, Blindflug, 역자 주: 항공 분야의 용어로, 조종사가 외부 시야가 아닌 항공 계기에만 의존하여 비행하는 것을 의미)'이라는 이름이 절묘하게 들어맞는 계기 훈련법이 발전했다."106 그러나 초기 비행 시뮬레이터의 계기들이 훈련생에게 실질적인 학습 효과를 주려면, 실제 항공기의 거동을 따라 학생들의 조작에 맞춰 반응해야만 했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당시에는 우선 비행 교관이 '환경'의 역할을 대신했다. 즉, 교관들이 비행의 동역학Dynamik에 대한 자신들의 지식을 바탕으로 시뮬레이터의 계기를 직접 조작하며 학생들의 행동에 일일이 반응해 주었던 것이다.107
이러한 지식은 점차 기계 자체에 구현되기 시작한다. 즉, 기계 및 전기 회로Schaltungen가 항공역학Aerodynamik 이론의 핵심 원리를 내장하게 되면서, 학습 목표에 맞는 반응을 스스로 수행하는 기계를 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발전이 진행됨에 따라 1940년대에는 비행 특성을 교체할 수 있는 비행 시뮬레이터를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등장하는데, 이는 '일반화된 훈련 장치generalized trainer'108로서 어떤 종류의 기존 항공기나 미래 항공기든 시뮬레이션하기 위함이었다. 그러한 시뮬레이터는 이중의 기능을 수행할 터였다. 한편으로는 조종 인력의 계기 비행 훈련에 사용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기종을 제작하기 전에 시험 비행하는 데에도 활용될 수 있었다.109 이러한 구상에 따라 1943년 미국 항공국U.S. Bureau for Aeronautics 산하 특수 장비 부서Special Devices Division의 의뢰로 한 프로젝트가 시작되는데, 그 목표가 바로 그러한 범용 시뮬레이터, 즉 항공기 안정성 및 제어 분석기Aircraft Stability and Control Analyzer, ASCA였다.110 ASCA의 제작 의뢰는 MIT가 맡게 되었다. 이 장비는 전기공학과 소속 서보메커니즘Servomechanisms 연구소에서 엔지니어 제이 포레스터Jay Forrester와 로버트 에버렛Robert Everett의 주도 하에 개발될 예정이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발전은 당연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1943년에, 첫째 항공역학Aerodynamik의 방정식을 계산하고, 둘째 그 계산 과정에 개입할 수 있으며, 셋째 그 개입에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기계를 구상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는,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한 기계의 구상이 가능했던 것은 오히려 전쟁 이전 시대 공학 기술 분야의 제어 공학이 발전한 결과였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이 발전의 과정에서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나고, '피드백'은 이 분야의 핵심 개념으로, 그 활용은 핵심적인 방법론으로 자리 잡게 된다. 결국 '일반화된 훈련 장치'라는 아이디어는, 그것을 제작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은 서보메커니즘 연구소의 탄생과 마찬가지로, 바로 이 제어 공학의 패러다임 전환이 낳은 결과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러한 발전은 비록 짧은 전성기를 누리는 데 그쳤지만 오늘날까지 그 영향력을 유지하게 될 새로운 과학 분야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바로 사이버네틱스이다.111
2.2 피드백이 주도권을 잡다 (FEEDBACK TAKES CONTROL)
2.2.1 아날로그 계산 (Analog Rechnen)
1920년대 초반, MIT의 전기공학과Electrical Engineering Department는 그 이름에 걸맞게 순수 전기 공학 분야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미국 전역의 인프라 전력화는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었고, 컨설팅 회사 '잭슨 앤드 모어랜드Jackson and Moreland'는 미국 북서부의 에너지 공급업체들을 도와 캐나다의 수력 발전으로 생산된 전기를 뉴잉글랜드와 뉴욕의 전력망에 공급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 회사의 소유주 중 한 명이 바로 전기공학과 학과장이기도 한 듀갈드 C. 잭슨Dugald C. Jackson이었다.112
그의 주도 하에, 학과는 전력망의 작동Verhalten을 연구했다. 초기 연구는 실제 전력망의 거동을 실험실 환경에서 연구할 수 있게 해주는 축소 모형 전력망Miniatur-Stromnetzen을 통해 이루어졌다.113 이 축소 모형 전력망은 구조적으로 거대한 원본과 동일했다. 따라서 이 모형들은 실제 전력망과 속성이 동일한 아날로그Analogon를 형성했으며, 이런 의미에서 초기의 아날로그 계산기Analogrechner라 할 수 있다. 실제로 1950년대까지 '아날로그'라는 단어는 주로 이러한 종류의 모델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다.114 이처럼 '속성이 동일한 아날로그 모델'은 도상적bildhaften 모델이나 형식적formalen 모델과는 구별되었다.115
전기공학과의 축소 모형 전력망에 더해, 곧 다른 종류의 회로들이 도입된다. 학과는 더 이상 시뮬레이션 대상인 전력망의 속성을 직접적으로 모사模寫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전력망의 형식적 모델을 '계산'하는 전자 기계 시스템을 실험하기 시작했다. 이 연구는 당시 MIT의 전기공학 교수였던 버니바 부시Vannevar Bush와 수학을 가르치던 노버트 위너Norbert Wiener에 의해 중점적으로 추진된다.116 그들 밑에서 1920년에 학생으로 학과에 들어온 해럴드 헤이즌Harold Hazen과 같은 엔지니어들이 그러한 '계산 회로'를 연구했다. 이 연구의 가장 유명한 결과물은 부시의 미분 해석기Differential Analyzer이며, 헤이즌은 여기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미분 해석기의 직접적인 선행 모델은 프로덕트 인테그래프Product Integraph이다. 이 장치는 엔지니어 존 R. 카슨John R. Carson117의 네트워크 방정식을 계산하기 위해 설계되었다. 이를 위해서는 합성곱 적분Faltungsintegrale을 계산해야 했는데, 그 일반적인 형태는 다음과 같다.118
따라서 이를 풀기 위해서는 두 함수의 곱에 대한 적분값을 구해야 한다.
프로덕트 인테그래프는 이 계산을 전자 기계elektromechanisch 방식으로 구현한다. 즉, 입력, 처리, 출력은 전류 및 전압의 변화와 기계적 움직임에 기반을 둔다. 이를 위해 먼저 모터가 테이블을 수평으로 움직인다. 테이블 위에는 함께 계산될 함수 f₁(x)와 f₂(x)의 그래프가 놓여 있다. 테이블이 수평으로 움직이며 x축 방향으로 이 곡선들을 따라가는 동안, 두 명의 조작자는 각각 슬라이딩 조절기Schieberegler를 이용해 해당 지점의 y축 위치를 따라가야 한다 (그림 7). 이 조절기들은 가변저항기Potentiometer이자 전기 회로Stromkreis의 일부이므로, 그 움직임은 회로 내의 전류를 변화시킨다. 이제 전력량계Wattstundenmeter를 이용하면 이로부터 비롯된 전기 일electrocal work을 측정할 수 있는데, 전기 회로에서 이 값은 시간에 대한 함수로서 전압과 전류를 곱한 값의 적분과 일치한다.
따라서 전력량계는 회로의 전기 일electrical work을 측정하는 방식으로 두 함수의 곱에 대한 적분을 계산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전력량계가 측정하는 함수는 네트워크 방정식을 계산하는 데 필요한 형태와 정확히 일치한다.119 적절한 회로는 포텐셔미터의 저항 변화를 전압U과 전류I에 대응시키기만 하면 되었다. 프로덕트 인테그래프에서는 계산과 측정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림 7: 프로덕트 인테그래프 개략도 (Stuart Bennett. A History of Control Engineering 1930-1955. Hitchin: Peter Peregrinus Ltd., 1993, p. 100에서 인용).
이러한 계산 기계의 제작과 함께, 전기공학과의 연구 초점은 축소 모형의 전력망을 제작하는 것에서 벗어나 그 속성을 '계산'하는 방향으로 이동했을 뿐만 아니라, '아날로그'라는 형용사의 의미 또한 점진적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초기에 '아날로그'가 속성이 동일한 모델을 지칭했다면, 오늘날 통용되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이분법적dichotomische 대립은 잘 알려져 있듯이 모델과 모델링 대상의 관계가 아닌, 전적으로 계산의 방식을 문제 삼는다. 즉, 어떤 기계가 유한한 수의 이산적diskreten 상태로 계산하는지, 아니면 연속적인kontinuierlichen 값으로 계산하는지를 묻는 것이다. 이 구분은, 한편으로는 유한한 해상도Auflösung를 가진 디지털 숫자로 계산하는 것의 정확성과, 다른 한편으로는 잠재적으로 무한한 해상도를 갖지만 측정 과정을 거치면서 그 정확성이 제한되는 아날로그 계산 사이의 '정확성'에 대한 이분법으로서 처음에는 흥미를 끌었다. 그러나 이러한 '아날로그'의 의미는 첫째, 프로덕트 인테그래프와 같이 '측정하는 계산 기계'가 만들어진 후에야 비로소 생겨난다. 둘째, 이는 이산적 상태로 계산하는 기계, 즉 '아날로그/디지털'이라는 이분법에서 그 반대편을 형성하는 기계의 존재와 보급을 전제한다. 이 이분법은 두 유형의 '계산 장비computing equipment'가 모두 사용되는 맥락 속에서 비로소 탄생한다. 더글러스 하트리Douglas Hartree는 1946년 네이처Nature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계산 장비는 두 개의 주요 부류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그는 당시로서는 새로웠던 이 구분을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이 두 부류를 각각 'instrument(기기)'와 'machine(기계)'이라는 용어로 구분하는 것이 편리하다는 것을 알았다. 미국에서는 'analogue(아날로그)' 기계와 'digital(디지털)' 기계라는 용어를 사용한다."120 이 구분이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지배적인 의미의 틀로 완전히 자리 잡기까지는 몇 년이 더 걸린다. 그러나 오늘날 이 이분법은 컴퓨터와 미디어에 관한 담론을 근본적으로 구조화하며, 이 과정에서 '디지털'은 시간이 흐르며 점차 '이진binär'과 동일시된다.121
전기공학과 엔지니어들에게, 속성이 동일한 아날로그 모델에서 이러한 의미의 아날로그 계산기로의 이행은 아마 그리 큰 도약으로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프로덕트 인테그래프에서는 측정이 곧 계산이 되지만, 계산의 대상인 네트워크 방정식은 그것을 계산하는 데 사용된 수단인 전기 일electrical work, 전류, 전압과 마찬가지로 명백히 전기 공학의 영역에 속했기 때문이다. 또한, 역사적으로 볼 때 모델과 계산기 사이에는 '네트워크 분석기Network Analyzer'와 같은 유연한 아날로그 모델이라는 중간 단계가 존재했다. 이 장치는 더 이상 특정 전력망 하나만을 모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실제 전력망을 시뮬레이션하는 데 사용될 수 있었다.122 이 때문에 프로덕트 인테그래프와 같은 아날로그 계산기는 축소 모형 전력망과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그저 ‘회로’나 '네트워크'로 불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이켜보면, 프로덕트 인테그래프는 '아날로그 기기'의 전형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프로덕트 인테그래프가 네트워크 분석기와 같은 모델보다 유연성이 확장되었다고는 해도, 대부분의 아날로그 계산기처럼 여전히 특정한 목적을 가진 기계였다. 즉, 두 함수의 곱에 대한 적분은 계산할 수 있었지만, 가령 다른 형태의 미분 방정식Differentialgleichungen으로 기술되는 문제에는 적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헤이즌은 기존의 형태와는 다른 동태Dynamik를 보이는 전기 진동 회로elektrischen Schwingkreis를 다루어 보던 중, 프로덕트 인테그래프에 두 번째 적분Integration 단계만 추가된다면 이 또한 계산할 수 있으리라는 결론에 이른다. 이에 부시는 그렇게 확장된 프로덕트 인테그래프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의 범위가 훨씬 더 넓다는 것을 보여준다.123
헤이즌은 그러한 다단계 적분기integrator의 제작에 착수한다. 그러나 두 번째 통합 단계를 위해서는 더 이상 전기 일electrical work 측정 방식에 의존하지 않고, 더 오래된 방식을 사용한다.124 즉, 일정한 속도로 회전하는 원판 위를 굴러가는 바퀴는, 그 원판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더 빨리 회전하게 된다. 만약 이 바퀴의 위치가 어떤 함수의 값에 따라 변한다면, 바퀴의 총 회전수는 그 함수의 적분값에 해당한다. 이러한 '디스크-휠 통합기(disc-and-wheel integrator, 역자 주: 원판과 바퀴의 기계적 상호작용을 이용한 적분 장치)'는 이미 19세기 초에 플래니미터(Planimeter, 역자 주: 지도 위의 불규칙한 도형의 면적을 측정하는 기구)로 사용되었는데, 지도 위의 경계선을 따라가 그 안에 갇힌 면적을 측정하는 방식이었다. 이 원리는 마침내 1876년 이후 켈빈 경Lord Kelvin이 제작한 조석 예측기Tide Predictor를 통해 유명해졌는데, 이 장치는 조수의 높이를 예측하기 위해 태양과 달의 겉보기 운동이 만들어내는 진동을 적분했다.
켈빈은 조석 예측기를 조수 높이 예측이라는 특수한 목적의 아날로그 기기로 제작했지만, 그는 이미 그러한 적분기들이 어떤 종류의 미분 방정식이든 푸는 데 사용될 수 있음을 간파했다. 왜냐하면 조석 예측기는 각각의 근삿값이 다음 근삿값의 기반이 된다면, 미분 방정식을 반복적으로 근사iteratively approximate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만약 일련의 그러한 메커니즘을 직렬로 연결한다면, 결과는 단계를 거칠 때마다 개선되어 마침내 미분 방정식의 실제 해에 무한히 가까워질 터였다. "따라서, 임의의 초기 함수가 주어지고 그것이 일련의 이러한 메커니즘을 통과하게 되면, 미분 방정식의 해로 수렴하는 일련의 함수들이 얻어질 것이다."125 하지만 켈빈은 이 원리를 급진적으로 단축시킬 수 있다는 점 또한 깨달았다. 선형적으로 차례차례 연결된 메커니즘의 사슬을 사용하는 대신, 메커니즘의 출력Ausgabe이 다시 그 자신의 입력Eingabe이 되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계산 과정 자체를 스스로에게 되먹이는 것, 즉 피드백 루프Feedback-Schleife를 닫는 것이 단 하나의 메커니즘만으로도 근삿값의 수렴을 보장할 터였다. "여기서 켈빈은 통합기 메커니즘이 미분 방정식의 해를 구하는 데 적용될 수 있게 하는 기본적인 피드백 원리를 발견했다. 비록 그가 이 원리를 어떤 차수의 어떤 미분 방정식의 경우로든 일반화했지만, 그의 메커니즘은 당시에 구현될 수 없었다."126 켈빈이 이론적으로 간파한 것은 그의 시대에 기술적으로는 실현 불가능했다.
프로덕트 인테그래프를 '디스크-휠 통합기'로 확장한 후, 부시는 마침내 이 아이디어를 실현할 계산기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바로 그 유명한 미분 해석기Differential Analyzer이다. 이 장치는 매우 다양한 미분 방정식을 푸는 데 사용되었으며, 오로지 기계적인 '디스크-휠 적분기'만을 사용했다.127 이 장치의 제작과 함께, 전기공학과는 응용 분야 및 산업계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던 전력망 연구에서 완전히 벗어난다. 미분 해석기는 더 이상 네트워크 방정식만을 계산하고 그려내는 데 그치지 않고, 공학에서부터 천체물리학에 이르는 광범위한 문제에 적용되었다. 그러나 계산 과정의 되먹임이 이루어지는 그 기술적 기반은 동일한 원리, 즉 피드백에 바탕을 둘 것이었다.
2.2.2 신호 추적 (Signalverfolgung)
(전자)기계 장치instrument를 이용한 계산은 하나의 수행Performance이다. 이는 곧 '수학 방정식을 운동감각적으로 재현하는 것to kinetically act out the mathematical equation'이다.128 프로덕트 인테그래프에서는 조작자와 테이블의 움직임이 전력량계의 움직임으로, 그리고 후에는 '원판-바퀴 적분기disc-and-wheel integrator'의 움직임으로 전달übertragen된다. 미분 해석기 또한 마찬가지이다. "미분 해석기는 [...] 단지 계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미분학Differentialrechnung 자체의 기계적 모델이기도 하다."129 — 이 모델은 계산 능력뿐만 아니라 자동적인 가시성Sichtbarkeit까지 갖추고 있는데, 피아스Pias가 단언하듯이, 여기서는 계산과 표현의 관계가 지표적130(indexikalisch, 역자 주: 기호학 용어로, 연기가 불을 가리키듯 원인과 결과처럼 직접적인 물리적 관계를 맺고 있음을 의미함)이기 때문이다. 즉, "조작자와 플로터 암plotter arm의 움직임이 실제로 처리되는 바로 그 데이터"라는 명제가 성립하는 것이다.131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산 결과는 최종적으로 시각화될 필요가 있다. 우선 계산 과정, 즉 '재현acting out'의 결과는 단지 기계 부품의 움직임으로만 나타날 뿐이다. 프로덕트 인테그래프로 계산을 마쳤을 때 전력량계의 회전이 우리가 찾던 적분값에 해당하기는 하지만, 이 결과는 아직 읽을 수 있는 함수 그래프의 형태로 변환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 회전 속도에 맞춰 펜이 함수 그래프의 y축을 따라 위아래로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펜의 움직임을 이 회전과 연동koppeln시키는 문제는, 켈빈이 실패했던 바로 그 문제와 동일한 것으로 드러난다. 적분기integrator 단계들 사이에 피드백 루프를 닫으려면, 한 '원판-바퀴 적분기'의 결과가 다시 계산 과정으로 되먹임zurückschleifen될 수 있어야 했다. 즉, 두 번째 적분기가 첫 번째 적분기의 회전을 '처리'할 수 있도록 두 장치가 직렬hintereinander로 연결될 수 있어야만 했다. 켈빈이 그러한 메커니즘을 구현할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었다. 한 적분기 바퀴의 토크Drehmoment가 다른 적분기의 원판을 구동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132
이처럼 켈빈의 시대에서부터 훗날의 프로덕트 인테그래프와 미분 해석기에 이르기까지, 아날로그 계산은 역설적이게도 자기 자신을 가능하게 했던 바로 그 본질적인 문제에 부딪힌다. 아날로그 계산의 전제는 기계 부품의 움직임이 "실제로 처리되는 바로 그 데이터"133라는 점이다. 하지만 이는 곧 모든 마찰 손실Reibungsverlust이 측정 오차이자 계산 오차로 이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프로덕트 인테그래프의 펜은 그림을 그리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적분기의 회전에서 직접 얻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미분 해석기에 있는 적분기 바퀴의 토크Drehmoment 역시 다음 적분기의 원판을 구동하는 데 사용될 수 없다.
따라서 아날로그 계산기에서 계산하는 요소와 표현하는 요소 사이에는, 한 요소의 움직임을 감지하여aufgreifen, 증폭시킨 뒤verstärken, 다음 요소로 전달할 수 있는weiterreichen 메커니즘이 삽입되어야만 한다. 결국 아날로그 계산은, 기계 부품의 변화하는 위치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도 그 위치를 정확히 추적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과제를 안게 된다. 이는 곧 '변화하는 신호를 추적하는 문제'가 되는 것이다. "문제는 빠르게 변화하는 신호를 정확하게 따라갈 수 있는 전자 기계식 위치 선정 시스템을 고안하는 것이다."134
1927년, 부시와 헤이즌은 프로덕트 인테그래프와 그 확장형에 대한 연구를 정리하며, 이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움직임을 자동으로 추적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이 적분기integrator 축들—첫 단계에서는 전력량계, 두 번째 단계에서는 바퀴 축—이 모든 마찰과 부하 토크load torque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점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이 축들은 기록용 축을 구동하기 위한 에너지를 직접 공급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각 기록용 축을 구동하기 위해 서보 모터를 이용한 추종 메커니즘servo-motor follower mechanism이 사용되는데, 이는 적분기 축에서 요구되는 에너지 출력을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줄여줄 뿐만 아니라, 앞서 언급했듯이, 동시에 이 축들의 베어링 마찰을 거의 제거해 준다. 실용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 메커니즘이야말로 이 기계가 성공할 수 있었던 진정한 핵심이다.135
'실용적인 관점에서' 볼 때, MIT에서 이루어진 전자 기계식 아날로그 계산기의 개발은 무엇보다도 신호 추적을 위한 메커니즘의 개발 과정 그 자체였다. 그리고 이러한 메커니즘은 서보메커니즘Servomechanismen이라 불리게 된다.
2.2.3 루프 닫기 (Closing the Loop)
이 문제는 규모가 큰 전력망의 맥락에서 등장했지만, 켈빈의 사례에서 이미 보았듯이 이 분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며, 전자 기계 장치의 제작이라는 영역에도 한정되지 않는다. MIT에서 아날로그 계산기가 개발되던 동시대에, 이 문제는 정보통신 기술Nachrichtentechnik 분야에서도 핵심적인 과제로 부상한다. 가령 미국 전화 회사 AT&T 산하의 벨 연구소Bell Laboratories에서는 해리 나이퀴스트Harry Nyquist, 헨드릭 보디Hendrik Bode, 해럴드 스티븐 블랙Harold Stephen Black과 같은 엔지니어들이 점점 더 먼 거리로 전화 통화를 전송하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었다.136
대륙 횡단 전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AT&T는 고성능 증폭기를 필요로 했다. 그래서 초기에는 진공관 증폭기를 중계 증폭기repeater amplifier로 통신선에 연결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결정적인 단점이 있었다. 바로 진공관의 비선형nichtlinearen 증폭 특성으로 인해 전송된 음성이 왜곡된다는 점이다.137 오랫동안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증폭 특성이 최대한 선형에 가까운 진공관을 개발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졌지만138, 블랙은 이미 1920년대 초에 이 문제에 대한 전혀 다른 해결책을 개발한다. 그는 증폭기 스스로가 만들어낸 오류를 이용하여 그 오류를 바로잡는 증폭기를 만든 것이다.139
이 회로는 입력 신호뿐만 아니라, 추가적인 입력으로 되먹임rückgekoppelt되는 자기 자신의 출력까지 처리한다. 이는 이미 켈빈의 시대에는 이론상으로만 가능했던, 되먹임 구조의 조석 예측기가 지녔던 바로 그 특징적인 과정이다. 이러한 '피드백feeding back'을 통해 피드백 루프Feedback-Schleife가 닫히기 때문에, 제어 공학에서는 오늘날까지 이러한 회로를 폐쇄 루프 제어closed loop control라는 개념으로 다룬다. 이와 대조적으로, 순수한 피드포워드feed-forward 회로로서 자신의 작업 결과에 대해서는 무지한 중계 증폭기와 같은 회로는 개방 루프open loop 상태에서 작동한다.
더 나아가, 블랙은 여기서 피드백을 감쇠Dämpfung를 위해 사용한다. 즉, 분리된 왜곡 신호를 출력 신호에서 차감하므로, 이 피드백은 네거티브 피드백Negative Feedback이다. 이를 통해 한편으로는 증폭기의 전체 이득gain이 피드포워드 부품들만 있을 때보다 낮아진다. 다른 한편으로는, 시스템이 원하는 값과의 편차를 자동으로 보상하게 된다.
블랙의 초기 해결책은 정보통신 기술 분야에서 피드백을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명료하게 보여주기는 했지만, 증폭기 문제는 그것으로 아직 해결된 것이 아니었다. 블랙의 회로에서는 두 증폭기의 이득gain이 매우 정밀하게,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서로 일치하도록 조정되어야 했다. 사용된 진공관 중 하나의 배터리 전압이나 히터 전류Heizstrom가 변하기만 해도, 회로는 더 이상 안정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 해결책은 실용화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140
몇 년이 흐른 뒤에야 블랙은 이 문제를 최종적으로 해결한다. 1927년, 그는 '전자식 네거티브 피드백 증폭기electronic negative feedback amplifier'에서, 증폭되고 잡음이 섞인 진공관 증폭기의 출력 신호를 역위상in umgekehrter Phase으로 만들어 입력 신호에 더하는 방식을 고안했다. 여기서는 단 하나의 증폭기만 사용되므로, 이제 출력 신호는 오로지 사용된 피드백 회로에 의해서만 결정되었고 증폭기 성능의 모든 변동은 자동으로 보상되었다. 이 시스템은 기술적인 의미에서 자기 보정적selbstkorrigierend인 셈이다.141
이는 AT&T에서 이루어질 이후 연구의 출발점이 된다. 해리 나이퀴스트는 블랙과 함께 '전자식 네거티브 피드백 증폭기'가 원치 않는 발진Oszillationen을 일으키지 않도록 안정화하는 작업을 하면서, 나이퀴스트 안정도 판별법Nyquist stability criterion과 나이퀴스트 선도Nyquist diagram라는 피드백 시스템을 다루는 근본적인 방법론을 개발한다.142
각주
Footnotes
-
Claus Pias. »Zeit der Kybernetik – Eine Einstimmung«. In: Cybernetics/Kybernetik – The Macy Conferences. Volume II. Berlin und Zürich: Diaphanes, 2004, S. 9–41, S. 9. ↩
-
Ebd., S. 16. ↩
-
Ebd. ↩
-
Norbert Wiener. Cybernetics: or Control and Communication in the Animal and the Machine. 2. Aufl. Cambridge, MA: MIT Press, 1961 [1948]. ↩
-
Vergleiche hierzu Pias, »Zeit der Kybernetik – Eine Einstimmung«, S. 13. ↩
-
Vergleiche hierzu Philipp Aumann. Mode und Methode. Die Kybernetik in der Bundesrepublik Deutschland. Göttingen: Wallstein Verlag, 2009, S. 39, Heinz von Foerster. ↩
-
Vergleiche hierzu Andrew Pickering. Kybernetik und neue Ontologien. Berlin: Merve, 2007, S. 90. ↩
-
Ebd. ↩
-
Søren Bro Pold. »Interface Perception: The Cybernetic Mentality and Its Critics: Ubermorgen.com«. In: Interface Criticism: Aesthetics Beyond Buttons. Hrsg. von Christian Ulrik Andersen und Søren Bro Pold. Aarhus: Aarhus University Press, 2011, S. 91. ↩
-
Ebd., S. 110. ↩
-
Tom Froese. »From Cybernetics to Second-Order Cybernetics?: A Comparative Analysis of Their Central Ideas«. In: Constructivist Foundations 5.2 (2010), S. 75–85, S. 77. ↩
-
Jean-Pierre Dupuy. The Mechanization of the Mind. On the Origins of Cognitive Science.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0, S. 15. ↩
-
Thomas Pynchon. Mason & Dixon. Reinbek: Rohwohlt, 2001, S. 439-440. ↩
-
Paul Doutrich. »Cresap’s War: Expansion and Conflict in the Susquehanna Valley«. In: Pennsylvania History 53.2 (1986), S. 89–104, S. ↩
-
Hierzu und zum Folgenden vergleiche auch Lasse Scherffig. »$GPGSV: Satellites in View«. In: Migrating: Art: Academies: Hrsg. von Mindaugas Gapševičius. Angoulême, Köln und Vilnius: EESI, KHM und VDA, 2010, S. 258–267. ↩
-
Vergleiche hierzu Thomas D. Cope und H. W. Robinson. »Charles Mason, Jeremiah Dixon and the Royal Society«. In: Notes and Records of the Royal Society of London 9.1 (1951), S. 55–78. ↩
-
Pynchon, Mason & Dixon, S. 881. ↩
-
Albert Schödlbauer. Geodätische Astronomie: Grundlagen und Konzepte. Berlin: Walter de Gruyter, 2000, S. 25. ↩
-
Ebd., S. 201. ↩
-
Wobei der scheinbare Sonnentag, der sich aus der Wiederkehr der Sonne ergibt, dank der Bewegung der Erde um die Sonne kürzer ist als der scheinbare Sterntag, der sich an der scheinbaren Bewegung der Fixsterne orientiert. Beide sind zusätzlich zu unterscheiden vom mittleren Sonnen- und Sterntag, die im Gegensatz zu beobachteten scheinbaren Tagen von idealisierten exakt gleich langen Tagen ausgehen. Vergleiche Sir Harold Spencer Jones. »The Measurement of Time«. In: Reports on Progress in Physics 4 (1937), S. 1–26 ↩
-
Vergleiche hierzu Jones, »The Measurement of Time«. ↩
-
Christoph Hoffmann. »Constant differences: Friedrich Wilhelm Bessel, the concept of the observer in early nineteenth-century practical astronomy and the history of the personal equation«. In: British Journal for the History of Science 40.3 (2007), S. 333–365, S. 360. ↩
-
Jones, »The Measurement of Time«, S. 3, Schödlbauer, Geodätische Astronomie: Grundlagen und Konzepte, S. 464 ↩
-
Hoffmann, »Constant differences: Friedrich Wilhelm Bessel, the concept of the observer in early nineteenth-century practical astronomy and the history of the personal equation«, S. 348. ↩
-
Jones, »The Measurement of Time«, S. 4. ↩
-
Schödlbauer, Geodätische Astronomie: Grundlagen und Konzepte, S. 302. ↩
-
Der „Urmeter“ wird 1791 als zehnmillionster Teil eines Viertels des Erdmeridians definiert, während die Sekunde ursprünglich als 1/86400 eines durchschnittlichen Sonnentags definiert wurde. Obwohl beide Maßeinheiten daher zunächst unabhängig voneinander sind, ist der Zusammenhang von Meter und Sekunde, den die Pendeluhr herstellt, wahrscheinlich auch kein reiner Zufall. Vielmehr ist davon auszugehen, dass die Entscheidung für ausgerechnet den zehnmillionsten Teil eines Viertels des Erdmeridians (und nicht eines anderen Teils einer anderen Länge, wie etwa der des Äquators) kein Zufall ist, sondern dass hier eine Länge gewählt wurde, die sowohl auf der Erdoberfläche wie auch in der astronomischen Praxis der Zeitmessung eine Verankerung hat. Eine ausführliche Diskussion hierzu liefern Paolo Agnoli und Giulio D’Agostini. Why does the meter beat the second? Zuletzt abgerufen am 24.08.2014. 2005. url: http://arxiv.org/abs/physics/0412078. ↩
-
Vergleiche Jones, »The Measurement of Time«, Mary Croarken. »Astronomical Labourers: Maskelyne’s Assistants at the Royal Observatory, Greenwich, 1765-1811«. In: Notes and Records of the Royal Society of London 57.3 (2003), S. 258–298, sowie Edward S. Holden. »The Personal Equation«. In: Popular Science Monthly 6 (1875), S. 385–398. ↩
-
Croarken, »Astronomical Labourers: Maskelyne’s Assistants at the Royal Observatory, Greenwich, 1765-1811«. ↩
-
Cope und Robinson, »Charles Mason, Jeremiah Dixon and the Royal Society«. ↩
-
Croarken, »Astronomical Labourers: Maskelyne’s Assistants at the Royal Observatory, Greenwich, 1765-1811«, S. 288-289. ↩
-
Ebd., S. 296. ↩
-
Zitiert nach ebd., S. 338. ↩
-
Hoffmann, »Constant differences: Friedrich Wilhelm Bessel, the concept of the observer in early nineteenth-century practical astronomy and the history of the personal equation«, S. 338. ↩
-
Mollon und Perkins, »Errors of judgement at Greenwich in 1796«. ↩
-
Hoffmann, »Constant differences: Friedrich Wilhelm Bessel, the concept of the observer in early nineteenth-century practical astronomy and the history of the personal equation«, S. 333. ↩
-
Bessel zitiert nach ebd., S. 345. ↩
-
Gauss zitiert nach ebd., S. 42. ↩
-
Ebd., S. 336. ↩
-
Francis N. Maxfield. »The Observer: An Instrument of Precision«. In: The Ohio Journal of Science 25.5 (1927), S. 205–218, S. 218. ↩
-
Hoffmann, »Constant differences: Friedrich Wilhelm Bessel, the concept of the observer in early nineteenth-century practical astronomy and the history of the personal equation«, S. 354. ↩
-
Ebd., S. 356. Vergleiche auch Holden, »The Personal Equation«. ↩
-
Jones, »The Measurement of Time«, S. 6. ↩
-
Scherffig, »$GPGSV: Satellites in View«. ↩
-
Hoffmann, »Constant differences: Friedrich Wilhelm Bessel, the concept of the observer in early nineteenth-century practical astronomy and the history of the personal equation«, S. 361. ↩
-
Sigmund Exner. »Experimentelle Untersuchung der einfachsten psychischen Processe: Erste Abhandlung«. In: Archiv für die gesammte Physiologie des Menschen und der Thiere 7 (1873), S. 601–660. ↩
-
Ebd., S. 601. ↩
-
Ebd., S. 602. ↩
-
Ebd. ↩
-
Ebd. ↩
-
Ebd., S. 602-607. ↩
-
Vergleiche hierzu Wilhelm Wundt. Grundzüge der physiologischen Psychologie. Leipzig: Engelmann, 1874, S. 760-762. ↩
-
Henning Schmidgen. »Zur Genealogie der Reaktionsversuche in der experimentellen Psychologie«. In: Instrument – Experiment: historische Studien. Hrsg. von Christoph Meinel. Berlin und Diepholz: Verlag für Geschichte der Naturwissenschaften und der Technik, 2000, S. 168–179, S. 171. ↩
-
Mollon und Perkins, »Errors of judgement at Greenwich in 1796«, S. 101. ↩
-
Vergleiche hierzu 2.3.1. ↩
-
Schmidgen, »Zur Genealogie der Reaktionsversuche in der experimentellen Psychologie«, S. 170-171. ↩
-
Vergleiche hierzu Claus Pias. »Computer Spiel Welten«. Diss. Bauhaus-Universität Weimar, 2000, S. 12. ↩
-
Nicholas J. Wade und Dieter Heller. »Scopes of perception: The experimental manipulation of space and time«. In: Psychological Research 60.4 (1997), S. 227–237, S. 233. ↩
-
Schmidgen, »Zur Genealogie der Reaktionsversuche in der experimentellen Psychologie«, S. 171. ↩
-
Mollon und Perkins, »Errors of judgement at Greenwich in 1796«, S. 102. ↩
-
Sigmund Exner. »Experimentelle Untersuchung der einfachsten psychischen Processe: III. Abhandlung«. In: Archiv für die gesammte Physiologie des Menschen und der Thiere 11 (1875), S. 403–432. ↩
-
Ebd., S. 406-407. ↩
-
Ebd., S. 410. ↩
-
Exner zitiert nach Max Wertheimer. »Experimentelle Studien über das Sehen von Bewegung«. In: Zeitschrift für Psychologie und Physiologie der Sinnesorgane 61 (1912), S. 161–265, S. 223. ↩
-
Exner, »Experimentelle Untersuchung der einfachsten psychischen Processe: III. Abhandlung«, S. 431. ↩
-
Wertheimer, »Experimentelle Studien über das Sehen von Bewegung«. ↩
-
Robert M. Steinman, Zygmunt Pizlo und Filip J. Pizlo. »Phi is not beta, and why Wertheimer’s discovery launched the Gestalt revolution«. In: Vision Research 40 (2000), S. 2257–2264. ↩
-
David M. Eagleman. »Visual illusions and neurobiology«. In: Nature Reviews Neuroscience 2 (2001), S. 920–926, S. 920. ↩
-
Wertheimer, »Experimentelle Studien über das Sehen von Bewegung«, S. 167-168. ↩
-
Christoph Hoffmann. »ϕ-Phänomen Film. Der Kinematograph als Ereignis experimenteller Psychologie um 1900«. In: Die Adresse des Mediums. Hrsg. von Stefan Andriopoulos, Gabriele Schabacher und Eckhard Schumacher. Köln: DuMont, 2001, S. 236–252, S. 236. ↩
-
Wertheimer, »Experimentelle Studien über das Sehen von Bewegung«, S. 175-177. ↩
-
Ebd., S. 186. ↩
-
Ebd. ↩
-
Ebd. ↩
-
Ebd., S. 165. ↩
-
Vergleiche hierzu vor allem die Zusammenfassung ebd., S. 239-246. ↩
-
Ebd., S. 191. ↩
-
Ebd., S. 190-194. ↩
-
Ebd., S. 186-190. ↩
-
Ebd., S. 201-203. ↩
-
Wertheimer, »Experimentelle Studien über das Sehen von Bewegung«, S. 216-218. ↩
-
Ebd., S. 219. ↩
-
Ebd., S. 221-225. ↩
-
Ebd., S. 221. ↩
-
Ebd., S. 222-225. ↩
-
Vergleiche hierzu Steinman, Pizlo und Pizlo, »Phi is not beta, and why Wertheimer’s discovery launched the Gestalt revolution«. ↩
-
Zum Folgenden vergleiche Wertheimer, »Experimentelle Studien über das Sehen von Bewegung«, S. 247-250. ↩
-
Ebd., S. 251. ↩
-
Ein Begriff, der von Paul Virilio geprägt wurde, hier aber noch eine andere Rolle spielen wird (vergleiche 7.2.1). ↩
-
Wertheimer, »Experimentelle Studien über das Sehen von Bewegung«, S. 251. ↩
-
Hoffmann, »ϕ-Phänomen Film. Der Kinematograph als Ereignis experimenteller Psychologie um 1900«, S. 245. ↩
-
Steinman, Pizlo und Pizlo, »Phi is not beta, and why Wertheimer’s discovery launched the Gestalt revolution«, S. 2261. ↩
-
Max Wertheimer. »Was ist, was will Gestalttheorie?« In: Philosophische Zeitschrift für Forschung und Aussprache 1 (1925), S. 39–60. ↩
-
L. A. Necker. »Observations on some remarkable optical phaenomena seen in Switzerland; and on an optical phaenomenon which occurs on viewing a figure of a crystal or geometical solid«. In: London and Edinburgh Philosophical Magazine and Journal of Science 1 (1832), S. 329–337. ↩
-
Eagleman, »Visual illusions and neurobiology«, S. 922. ↩
-
Wie unwillkürlich das ist und welchen Einfluss etwa Aufmerksamkeit darauf hat ist bis heute nicht geklärt. Vergleiche hierzu zum Beispiel David A. Leopold und Nikos K. Logothetis. »Multistable phenomena: changing views in perception«. In: Trends in Cognitive Sciences 3.7 (1999), S. 254–264 und vor allem Kapitel 7 ↩
-
Hoffmann, »ϕ-Phänomen Film. Der Kinematograph als Ereignis experimenteller Psychologie um 1900«, S. 244-245. ↩
-
Paul von Schiller. »Stroboskopische Alternativversuche«. In: Psychologische Forschung 17 (1933), S. 179–214, S. 180. ↩
-
Ebd., Hervorhebung im Original. ↩
-
Ebd. ↩
-
von Schiller, »Stroboskopische Alternativversuche«, S. 181, Hervorhebung im Original. ↩
-
Vergleiche hierzu Kapitel 7. ↩
-
von Schiller, »Stroboskopische Alternativversuche«, S. 196, Hervorhebungen im Original. ↩
-
Ebd. ↩
-
Ebd., S. 195. ↩
-
Pias, »Computer Spiel Welten«, S. 52. ↩
-
Pias, »Computer Spiel Welten«, S. 52. ↩
-
Robert Everett. »Whirlwind«. In: A History of Computing in the Twentieth Century. Hrsg. von J. Howlett, Gian Carlo Rota und Nicholas Metropolis. Orlando: Academic Press, 1980, S. 365. ↩
-
Kent C. Redmond und Thomas M. Smith. Project Whirlwind: the history of a pioneer computer. Bedford, MA: Digital Press, 1980, S. 2. ↩
-
Ebd., S. 51. ↩
-
Zum Folgenden vergleiche auch Lasse Scherffig. »The Human Being as a Servo. Von Feedback Control zur Kybernetik«. In: Informatik 2009. Im Fokus das Leben. Hrsg. von Stefan Fischer, Erik Maehle und Rüdiger Reischuk. Lecture Notes in Informatics – Proceedings. Bonn: GI, 2009, S. 766–776, sowie Lasse Scherffig. »Feedback: Vom Unding zur Sache«. In: Code und Material: Exkursionen ins Undingliche. Hrsg. von Georg Trogemann. Wien und New York: Springer, 2010, S. 64–86. ↩
-
Stuart Bennett. A History of Control Engineering 1930-1955. Hitchin: Peter Peregrinus Ltd., 1993, S. 97. ↩
-
Ebd., S. 97-98. ↩
-
Gerard O’Brien und Jon Opie. »The role of representation in computation«. In: Cognitive Processing 10.1 (2008), S. 53–62, S. 57. ↩
-
Charles West Churchman. Operations research: eine Einführung in die Unternehmensforschung. München: Oldenbourg Verlag, 1971, S. 151-152. ↩
-
Bennett, A History of Control Engineering 1930-1955, S. 97. ↩
-
Carson arbeitet zu dieser Zeit bei AT&T in den Bell Laboratories, die hier noch eine wichtige Rolle spielen werden. ↩
-
Bennett, A History of Control Engineering 1930-1955, S. 98-99. ↩
-
Vergleiche zum Product Integraph ebd., S. 98-103 und David A. Mindell. Between human and machine: feedback, control, and computing before cybernetics. Baltimor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2004, S. 154-156. ↩
-
Douglas R. Hartree. »The Eniac, an Electronic Computing Machine«. In: Nature 158 (1946), S. 500–506, S. 500. ↩
-
Vergleiche zur Einführung Jens Schröter und Alexander Böhnke, Hrsg. Analog/Digital – Opposition oder Kontinuum? Zur Theorie und Geschichte einer Unterscheidung. Bielefeld: transcript, 2004, S. 7-30. ↩
-
Mindell, Between human and machine: feedback, control, and computing before cybernetics, S. 151-153. ↩
-
Bennett, A History of Control Engineering 1930-1955, S. 100. ↩
-
Zum Folgenden vergleiche Allan G. Bromley. »Analog Computing Devices«. In: Computing Before Computers. Hrsg. von William Aspray. Ames: Iowa State University Press, 1990, S. 156–199. ↩
-
Ebd., S. 176. ↩
-
Ebd. ↩
-
Bennett, A History of Control Engineering 1930-1955, S. 103. ↩
-
Larry Owen zitiert nach Pias, »Computer Spiel Welten«, S. 45. ↩
-
Ebd. ↩
-
Eine ausführliche Diskussion hierzu folgt im Abschnitt 4.5.2. ↩
-
Pias, »Computer Spiel Welten«, S. 45, Hervorhebung im Original. ↩
-
Bromley, »Analog Computing Devices«, S. 176-177. ↩
-
Pias, »Computer Spiel Welten«, S. 45, Hervorhebung im Original. ↩
-
Bennett, A History of Control Engineering 1930-1955, S. 101. ↩
-
Zitiert nach ebd., S. 102. ↩
-
Vergleiche hierzu ebd., S. 70-73 und Mindell, Between human and machine: feedback, control, and computing before cybernetics, S. 105-137. ↩
-
Bei Audiosignalen bedeutet eine nichtlineare Verstärkung, dass das Ausgangssignal nicht nur einfach eine größere Amplitude (und veränderte Phase) als das Eingangssignal besitzt. Das Signal wird verzerrt. In der Rockmusik wird sich die nichtlineare Verstärkung von Röhrenverstärkern schließlich als Gestaltungselement und Bedeutungsträger selbstständig machen. Die Nachrichtentechnik ist dagegen an einer sauberen, linearen Verstärkung interessiert. ↩
-
Mindell, Between human and machine: feedback, control, and computing before cybernetics, S. 116. ↩
-
Bennett, A History of Control Engineering 1930-1955, S. 73. ↩
-
Ebd., S. 73-74. ↩
-
Ebd., S. 74-75. ↩
-
Mindell, Between human and machine: feedback, control, and computing before cybernetics, S. 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