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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WIP] 인간 행동으로서 예술
 - 이 글은 1980년 The Journal of Aesthetics and Art Criticism에 게재된 Ellen Dissanayake의 논문 「Art as a Human Behavior: Toward an Ethological View of Art」(DOI:10.2307/430321)를 한글로 번역한 것이다. (논문 링크)
 - 각주 등과 같은 표기는 원문의 방식을 따랐다.
 - 선택된 한글 단어가 모호하거나 기타의 이유로 역자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경우에는 원문의 단어를 병기했다.
 - 역자가 추가한 설명은 '역주:'라고 표기했다.


 예술 철학과 같은 인문학 분야를 가르치고 연구하는 이라면 고민해볼 것이 있다. 그것은 그들 자신의 작업이 앎과 정신에 관한 철학적 사색의 유산 위에 서 있으며, 그 유산이 인간의 의식과 정신 활동이 가진 긴 진화의 역사에 물음을 던지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현대 언어 철학은 언어와 정신의 기능에 대한 유전적 소인을 인정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철학 분야는 최근의 고인류학적 발견이 암시하는 것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 연구를 진행한다. 그 암시하는 것들이란, 인간의 정신은 먼 옛날부터 있었고, 특정 생물학적 한계 내에서 진화해왔으며현재도 진화 중이며, 그것의 다양한 능력은 종으로서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필수적이며 중요했다는 것이다.1

 미학은 서양 철학의 한 분야이며, 일반적으로 과학적 개입 혹은 검토와 거리를 두어왔다. 서구적 사고에서 예술은 범주화, 정의, 혹은 정확한 측정과 같은 과학적 방법을 거부한다. 예술의 구성과 감상의 복합성은 사적이고 평가가 불가능하며 또한 대체로 일시적인 탓에 과학적인 검토의 대상으로 부적합하다.

 본 논문에서와 같이 예술을 생물학적 진화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그것을 과학적 분석에 종속시키는 것과 같지 않다. 구체적으로, 이는 인간이 다른 생물들과 마찬가지로 동물의 한 종이라는 가정에 기반하여 예술을 인간의 행동으로서 보는 방식이며,2 인간의 해부학적, 그리고 생리학적 특성이 자연 선택에 의해 형성되었음을 암시한다. 이러한 관점은 미학이 전통적으로 관심을 가졌던 몇 가지 문제들과 관련해 새로운 접근 방법을 제시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예술의 본성, 기원, 그리고 가치를 관념이나 유일무이sui generis한 것이 아닌 보편적이고 내재적인 인간의 행동 자질behavioral endowment로 보는 것이다.3 필자가 아는 한 예술을 이러한 방식으로 면밀히 검토하려는 시도는 이것이 처음이며, 따라서 필자의 노력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본 논문에 제시된 생각들을 수정하고 다듬고 확장하도록 격려하는 예비 조사의 성격을 갖는다.

 I. 행동학과 예술

 행동 생물학, 혹은 행동학이라고 불리는 이 학문은 살아있는 생물이 평범한 일상 중에 무엇을 행하는지 연구하는 비교적 새로운 학문이다. 이 학문은 일반적이고 구체적인 활동들, 특히 각 동물이 자연환경과 다른 생물들로 이루어진 더 큰 환경에 적응하는 독특한 방식에 기여하는 그러한 활동들을 정의하고 관찰한다. 행동학자들은 한 동물의 행동이 그 동물의 해부학과 생리학만큼이나 그 동물의 삶의 방식에 따라 달라지고 고유하다는 것을 인식하며, 구애와 짝짓기, 영역 유지, 그리고 거리 두기 방법 또는 의사소통 행위와 같은 행동 현상과 경향들을 관찰하고 비교한다.

 만약 인간이 진화를 거듭해온 동물 종이며 그 과정에서 행동 또한 생물학적 기관과 체계만큼이나 적응과 선택을 겪어왔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인간을 행동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가능하다. 인간행동학자들은 인간의 삶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몇몇 행동적 특징 혹은 경향들은 인간에게 고유하며 인간의 본성에서 비교적 변하지 않는 것들이라고 제안한다. 또한 이들은 이러한 특징 혹은 경향들이 인간의 성공적인 진화와 종으로서의 생존에 긍정적으로 기여하기 때문에 발생했고 유지되어 왔다고 주장한다.

 인간을 행동학적으로 보려고 시도하는 이들은 자주 선동주의자sensationalists, 환원주의자 혹은 기계론자로 치부된다. 그들은 엉성하거나 단순하고, 때로는 사실을 과대 포장한 이론을 내세운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지난 25,000년 동안 놀라운 문화적 진화를 보여왔다. 그 놀라울 만큼 다양한 징후들은 인간이 분명하게 기반해있는 보다 더 넓은 생물학적 진화의 한계를 모호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인간의 경우, 광범위하고 추측적인 이론을 반박하는 반례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한계들은 분명히 존재하며, 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러 사회에서 보편적인 인간 행동의 사례들을 수집하고 비교해야 한다. 다양한 인간 집단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세부적인 차이는 있지만 동물행동학자들이 대부분의 동물 사회에서도 확인한 행동의 일반적인 특징을 보편적으로 나타낸다. 예를 들어, 인간과 동물 사회 모두 일종의 사회적 계층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경향이 있다. 인간과 동물 (파충류, 새, 심지어 곤충도 포함) 모두 의례적이고 비언어적인 의사소통 신호를 사용하는데, 이는 감정적 응답을 형성하고, 공격성을 조절하며, 사회적 유대를 강화한다. 많은 어린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모든 인간 아이들도 놀이를 한다. 개별적인 문화적 차이에 가려져 있지만, 구애와 짝짓기 관행, 혹은 어머니와 영아 사이의 관계에서 근본적인 일반 패턴과 행동 순서behavioral sequence가 관찰되었다. 또한 동물과 인간 모두 타자와의 물리적 거리를 통해 개인의 영역을 유지하는데, 이는 친밀한 특정 인물, 혹은 특정 상황에 따라 완화되기도 한다.4

 이 외에 인간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들도 있다. 그중 하나가 예술이다.5 지금까지 발견된 모든 인간 사회는 우리현대 서구가 "예술"이라고 부르는 것의 예시를 갖고 있다. 우리가 보편적인 "예술 행동behavior of art"을 파악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 또 가능하다면 그것이 인간의 진화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까지 알아보는 것은 가치 있는 탐구가 될 것이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불쾌하거나 불경스러워 보일 수 있다. 신학의 주제가 사회학과 행동과학으로 넘어간 지금, 예술에 대해 고민하는 분야는 인간과 인간의 업적이 생물학적 불가피성biological imperatives보다 "위에" 있거나 적어도 무관하다고 추정하는 이들에게는 마지막 보루로 남아있다. 그러나 예술을 생물학적 과정에 뿌리를 둔 인간 본성의 근본적인 징후로서 보는 것은 그것을 그 뿌리로 환원하거나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의 본질적인 가치를 더욱 잘 인식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모든 생명체와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은 인간의 고유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는 그 고유성이 어디에 놓여있는지 더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 논문은 예술에 대한 행동학적 관점의 세 가지 측면, 다시 말해 (1) 그러한 관점이 요구하는 기본 가정에 대한 설명, (2) "예술 행위behavior of art"를 규명하려는 시도, (3) 예술이 인류 진화의 성공에 기여했다는 가정에 대한 논의를 다룰 것이다.

 II. 가정

 1. 예술에 대한 행동학적 관점은 행동으로서의 예술의 역사가 오늘날 우리가 예술의 역사로 간주하는 것을 훨씬 앞선다고 가정한다. 뗀석기, 동굴 벽화, 그리고 다산의 조각상들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예술의 유물artistic artifact이지만, 이들 또한 행위로서의 예술의 기원은 아니다. 그것의 기원은 적어도 구석기 시대 이전의 원시 인류 진화 단계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예술은 문화적 현상이며 그러한 의미에서 행동학의 관심 영역이다. 하지만 혹자는 언어, 숙련된 도구의 제작 그리고 사용과 같은 특정 문화적 행동들과 마찬가지로 예술 또한 덜 분화되고 유전적으로 결정된 행동과 경향에 그 뿌리가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행동학적 접근은 이것들을 조사하고 기술하려고 노력해야 한다.6

 2. 서론에서 암시되었던 또 하나의 가정은, 예술 행동behavior of art이 선택 가치selective value를 갖고 있으며, 종의 구성원들이 이를 수행함으로써 모종의 방식으로 그 종의 생존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정은 칸트 이후로 예술에 대한 근대적 관점에서 널리 받아들여진 전제, 다시 말해 예술은 "그 자체를 위한 것"이며 실용적인 혹은 외재적인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는 전제를 반박하는 듯 보인다. 일반적으로 행동학적 관점에서는 널리 퍼져있는 행동은 그 기능과 이유가 있다고 가정한다. 만약 예술이 긍정적인 선택 가치를 담지하지 않았다면, 예술은 보편적으로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예술과 관련하여 인간종 또는 그에 속한 개인의 생존, 혹은 그 개인의 유전자에 필수적인 것이 무엇인지 자문해야 한다.7

 3. 예술 행동의 자격 요건은 후술 될 내용에서 정의하고 논의되겠지만 여기서 한 가지 언급하자면, 행동으로서의 예술이라는 개념은 예술 작품을 만들고 감상하는 특정 예술 활동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는 "예술가"라는 소수의 특수한 영역이 아니라, 공격적인 혹은 성적인 행동과 같은 광범위한 일반 현상을 포함한다.

 4. 또한, 예술은 모든 사회에서 발견되지만 어떤 사회도 이 행동으로부터 나타나는 모든 종류의 징후들을 동일한 정도로 보여주거나 강조할 필요는 없다.

 5. 자연, 기원, 그리고 예술 행동의 역사에 대한 고찰은 그것의 결과적 가치에 대한 가정을 포함하지 않는다. 미학에 관한 많은 논의에서와 마찬가지로, "예술"은 "좋은 예술"을 상정하거나 의미하지 않는다.

 6. 한 시간과 공간에 속한 하나의 인간 집단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행동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서구의 관점에서 예술은 지금껏 존재해왔고 현재도 존재하는 수많은 증상 중 하나로서 그 자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7. 예술의 창작과 인식 (혹은 "감상") 그리고 그에 대한 응답은 쉬이 따로 생각된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 각각을 행동학적 범위 내에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III. 행동학적으로 바라본 예술

 그 문제점

 한때 철학자와 비평가들이 수행한 예술에 대한 논의는 예술이 한 대상에 내재된 특성예를 들어 아름다움, 조화, 비례, 재현의 정확성, 의미있는 형태에 의해 결정된다고 가정했는데, 이러한 특성은 감상자의 태도에 있는 일종의 선천적 기질predisposition에 의해 인식될 수 있었다. 이후 미학 이론이 발전함에 따라 부정할 수 없는 예술의 질과 특성들이 상당히 많아지고 있으며,8 이러한 질과 특성들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정의에 포함되어야 한다. 오늘날, 누군가가 예술을 정의하고자 한다면 그것이 명령적injunctive 혹은 모호하고 개방적open-textured이어야 한다는 데 대부분 동의한다. (역주: open-texture는 F. Waismann(1896-1959)이 도입한 개념으로, 경험적 진술에서 모호함의 보편적인 가능성을 가리킨다.)

 행동학적 접근과 철학 기반의 탐구는 서로 다른 종류의 문제와 어려움을 수반하지만, 그렇다고 행동학적 접근이 (적어도 초기에는) 더 간단하거나 더 쉽다는 것은 아니다.9 우선, 앞서 나열된 가정들이 위배되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예술이라고 부르는 것은 예술가에게만 그리고 서구 사회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 그리고 과거와 현재의 모든 사회에 적용 가능한 것이어야 하며, 또한 납득 가능한 적응 가치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와 동시에 우리가 예술적 행동이라고 부르는 것은 무의미할만큼 부자연스럽거나 광범위해서도 안된다.

 둘째, 예술에 대한 행동학적 관점을 제안하는 사람은 새로운 지평을 여는 것과 같다. 어떤 이들은 분명히 예술의 기원과 그것이 인류에게 갖는 의미, 그리고 필요성에 대해 제안했다. 그러나 이는 대부분 진화론자 혹은 생물학자가 아니라 철학, 역사, 비평, 그리고 미학 분야의 작가들에 의해 제시되었다. 이러한 주장은 예술이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로서의 행동이라는 행동학의 기본적인 전제에 근거하지 않으며, 따라서 위에 나열된 가정들을 충족하지 않는다.

 가령, 과거의 준진화론적quasi-evolutionary 견해는 예술을 놀이10, 신체 장식11, “구성적 욕구”configurative urge12, 창조적 혹은 표현적 충동13, 공감적 마술14, 지루함 해소15, 자기 과시self-glorification적 동기16 등 한 가지 근원으로 추적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이 중 어느 것도 다양한 예술의 기원을 설명하기에는 부적절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예술을 그것의 기원이 아니라 예술이 인간의 삶에 제공하는 몇 가지의 필수적인 요소가령, 장신구 혹은 장식, 현실을 위한 “연습”, 현실로부터의 도피, 감각적인 혹은 “미학”적인 만족, 질서, 무질서를 분리하여 예술이 무엇인지 결정하려는 시도 또한 있었다. 하지만 검토 결과, 이들 또한 부분적인 설명만을 제공하며 따라서 부적합하다.

 불운한 예술 철학자 못지않게 첫 번째 원칙을 찾는 동물행동학자들에게 슬픔을 안겨주는 것은 예술의 고질적이고 억누를 수 없는 다양성대상, 활동, 태도, 감정이다. 이러한 다양성은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다른 인간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메리카, 아프리카, 그리고 오세아니아의 원시 사회에서는 다양한 예술적 그리고 미학적 이해가 발견된다.17 그들 중 몇몇의 사회에서 예술은 매우 중요하게 다뤄지며, 몇몇에서는 그 중요함이 약하거나 전혀 중요하지 않기도 하다. 어떤 집단들에서 예술가는 전문가로 이해되는데 반면, 어떤 집단에서는 예술이 누구에게나 있는 능력이다. 예술은 특정한 공동의 목표를 이루는데 일조할 수 있고, 또 느낌의 개인적인 표현으로서 수행될 수 있다. 예술품은 신중하게 관리되기도, 아무렇게나 버려지기도 하며, 그들 자체로서 신성하고 가치있게 여겨지거나, 그것이 담고 있는 초자연적인 힘에 그 가치가 담겨있기도 하다. 또한 예술품의 가치는 새로움 혹은 전통적이고 정형화된 전통의 반복에 일조할 수도 있다. 그것의 묘사는 추상적일 수도 혹은 구체적일 수도 있다. 예술가는 존경을, 혹은 반대로 비난을 받거나 일탈적이고 사회적으로 열등한 존재로 간주될 수 있다. 어떤 집단에서는 예술이 사회로부터, 신적인 영역으로부터 발생한다고 여기며, 때로는 만연하고 저절로 발생하는 것이라고 간주하기도 한다. 한 명이 한 예술품을 만드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이지만, 어떤 집단에서는 여러 사람이 하나의 예술품을 위해 함께 작업하기도 한다.18

 우리 서구의 예술 개념은 일관되거나 명확하지 않다. 만일 우리가 예술에 관해 작성된 글들을 검토해본다면, 예술이라는 단어가 그 글의 저자에 따라 일련의 다양한 의미를 내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술은 인공물숙련된 기술이나 공예 혹은 인공물이라는 의미 모두에서, 공상가장, 소원 성취, 환상, 이상, 놀이, 창의력탐, 발명, 혁신, 자기 표현, 형식 또는 질서경험에서 형식적 질서를 발견하거나 부여하려는 심리적 지각 및 정신적 필요, 패턴 만들기, 질서로서의 인식 또는 아름다움, 고양감heightend existence(감정, 엑스터시, 특별한 경험, 오락), 무질서일탈 또는 부조화, 감각추상적 사고와 대조되는 감각 경험의 즉각적인 충만, 또는 색이나 소리와 같은 사물의 감각적 특성, 계시신 또는 현실에 대한 선천적인 끌림, 장식 또는 꾸밈아름답게 꾸미려는 욕구 또는 경향, 장식 또는 구성에 대한 충동, 자기 표현, 뜻 혹은 의미, 그리고 이들 중 둘 이상의 조합으로서 다양하게 이해된다.

 예술이 이 모든 것들과 모종의 관련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행동학적 관점에서 더 주의 깊게 살펴보면 ‘예술’이라는 개념은 사라진다. 위에서 언급된 경험의 각 측면은 ‘예술’이라는 특별한 행동을 유발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심리학이나 생물학적 욕구 혹은 경향에 포함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놀이 행위는 모든 비실용적 만들기는 물론, 공상, 환상, 가장, 장식 그리고 꾸미기까지 모두 포함할 수 있다. 탐구와 호기심은, 단순한 문제 해결이 아니라면, 혁신과 창의성의 사례들을 설명해낼 수 있다. 감각 경험은 지각의 사례로서 연구될 수 있다. 모든 동물은 형식적 질서와 예측 가능성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요소 없이는 인지가 이루어질 수 없으며, 인지가 질서를 지각하거나 부과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마찬가지로 모든 동물은 무질서와 새로움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요소를 포함하거나 제공하는 행동을 반드시 예술이라고 부를 필요는 없다. 고양감heightend existence은 성적 오르가즘, 성공적인 인정받음 혹은 권력 행사, 야망의 실현, 스포츠 경기, 재난, 놀이기구, 심지어 출산과 같은 예술 혹은 미적이라고 불리기 어려운 경험을 통해 추구하고 얻는 경우가 많다. 계시와 의미는 예술 뿐만 아니라 종교적 경험, 혹은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의 구성 요소이다.

 이들 중 하나를 예술이라고 혹은 예술에 의해 제공된다고 하더라도, 하나의 결정적인 식별 기준은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다. 예술이 이들 중 하나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예술적” 놀이, “예술적” 질서, “예술적” 인식, “예술적” “예술적” 의미가 어떻게 다른지 말해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예술의 무엇이 예술적인지 말해야 한다.

 예술 행위 파악하기

 만일 “예술 행위behavior of art”라고 할 만한 것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이 구석기 이전 우리의 조상들이 보여줬을 법한 능력이나 성향으로부터 진화를 거쳐 발달해왔다고 추정해야 한다. 나는 이 근원적인 성향이 일상적인 것과는 다른 차원level 혹은 질서인 “특별함specialness”을 인식하는 능력이라고 제안하고 싶다.

 오늘날에도 아이디어에 예술적 표현을 더하거나, 사물을 장식하거나 혹은 어떤 아이디어나 사물이 예술적이라고 인식할 때면 사람들은 그것에 특별함을 부여혹은 인정하는데, 그 특별함은 그것을 부여하는 이의 활동이나 고려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것을 특별하게 만들고, 그것이 비범하다는 것을 인식한다. 이러한 예술의 특성은 다른 사상가들에 의해 변형transformation19, 미적 전위轉位transposition 혹은 승격promotion 등의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20 이는 일종의 이행 또는 양자 도약21과 같은 것으로, 이를 통해 삶의 필수적인 것과 활동이 발생하는 일상적인 현실로부터 다른 질서, 즉 “예술적인 질서”22로의 도약이 발생하며, 이 “예술적인 질서”는 자신 고유의 동기 혹은 의도와 독특한 태도 혹은 반응을 갖고 있다.

 이 근본적인 성향은 예술과의 유사성이 자주 거론되는 두 분야, 놀이와 의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자면, 대부분의 경우에 놀이와 예술23은 모두 가설make-believe, 환상illusion, 그리고 은유를 사용한다. 그 둘 중 누구도 생존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고 “그것 자체”를 위해 수행된다. 둘 모두 행동으로서 불안정하고 비교적 예측 불가능하다. 둘 모두 새로움, 부적합, 놀라움, 복잡성, 변화, 다양성을 활용한다. 또한 둘 모두 긴장과 이완, 흥분과 완화, 일탈과 반복 혹은 재연이라는 역동성dynamic을 내재한다. 24

 의례와 예술25은 모두 감정을 형식화하고 이에 형태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또한 둘 모두 상징적인 “언어”를 사용하며, 표현적 효과를 얻기 위해 맥락에서 벗어나 있는 요소들을 사용하기도 하며, 과장하고 반복한다. 많은 의례들은 일상과는 다른 차원level이나 영역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예술은 이 특별하고 비범한 현실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의례에서 사용된다.26

 오늘날까지도 밀접한 예술과 놀이, 예술과 의례의 관계는 인류의 진화 역사에서 이들이 (만일 구분이 되었었다면)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음을 시사한다. 이 특별하게 하기라는 근본적인 성향은 서로 다른 진화적 요구사항에 따라 작용하고 서로 다른 신체적, 정신적 자질에 따라 형성되어, 결과적으로 서로 관련되어 있지만 대체로는 구분되는 별개의 흐름들, 즉 놀이, 의례 그리고 예술로 갈라질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예술은 특별하게 하기라는 더 광범위한 성향의 한 사례로 간주되어야 한다. 행동학적인 관점에서 예술적인 행동artistic behavior은 평범하고 실제적인 삶으로부터 또다른 “차원level”이라고 생각되어지는 것을 구성하거나 표현또는 인식하려는 의도27에 기반하여 일상적인 현실을 형성하거나 꾸민다.

 그러나 모든 사회와 사람들이 예술을 갖고 있다고 하여 그들 모두가 현대 서양 예술 이론이 흔히 전제하는 미적 태도로 예술을 대한다고 가정할 수는 없다. 예술, 특별하게 만들어진 것들 혹은 특별하게 하기에 대한 인간의 일반적인 반응은 이러하다: 힘, 크기, 화려함, 기술 또는 금전적 가치에 대한 감명, 군중 속에서 군중의 반응을 공유, 기성 관행이나 규범을 수행하면서 느끼는 만족감, 감각적 또는 운동 감각적 즐거움, 대리적 즐거움, 카타르시스 등.

 이러한 요소들은 예술에 대한 서구적 반응에도 포함될 수 있지만, 우리역주: 서구는 보통 “미학적인” 고려가 추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미학적인 고려란, 예술 작품이 일상의 세계와 분리된 차원으로 옮겨져 경험된다는 것 뿐 아니라, 그것이 그렇게 옮겨진 방식을 의식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서양인이 아닌 사람들도 분명히 그러한 판단을 할 수 있지만 (예를 들어, 어떤 이야기가 좋은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잘 전달되었다”28는 것을 인식, 어떤 분쟁이 해결되었을 뿐만 아니라 “정교하게 해결되었다”29는 것에 동의, 이 외에도 모든 고등 문명에서 여유와 교양을 갖춘 일부 사람들은 예술의 “예술”을 알아볼 수 있었다), 이러한 구별은 널리 퍼진 성향이나 능력이 아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는 이것이 어떠한 대상을 특별하게 만들고 그것들이 특별하다는 것을 알아보는 행위이며, 근본적이고 보편적이며 선택 가치를 지녔다고 말할 수 있지만, 이것이 그 특별함이 어떻게 달성되었는지를 알아보는 능력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무언가가 수행되는 방식인 “어떻게how”를 알아보는 것은 주어진 코드 내에서 어느 정도 자의식적으로 구별하고, 관계짓고, 인식하고, 조작을 수행하는 인지적 인식이 필요하다. 물론 이러한 종류의 의식은 인간의 의사소통과 인지, 그리고 인식 전반에 있어서 생물학적으로도 유용하다. 그러나 이것이 바흐의 푸가나 세잔의 풍경화를 감상하는데 필요한 정도로 발달하면, 이러한 능력은 생물학적으로 무관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Work in Process...

각주

Footnotes

  1. J. Z. Young, Programs of the Brain (Oxford University Press, 1987).

  2. J. H. Crook, "Social organization and the environment: aspects of contemporary social ethology," in C. L. Brace, and J. Metress (eds.), pp. 100-115 Man in Evolutionary Perspective (New York, 1975), p. 112.

  3. 이 논문은 특정 대상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선천적인 “생물학적” 가능성은 다루지 않는다. 특정 비율, 색상, 음악적 간격 등에 대한 선호는 광범위하고 일반적인 선천적 또는 보편적 기반이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해하는 예술 작품에 대한 “미적” 반응은 특정 혹은 고유한 상황에 내재되어 있는 미묘한 복잡성에 대한 반응에 가까운 탓에 정확한 분석과 측정에 적합하지 않고, 따라서 예술 작품에 대한 미적 반응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미적” 반응이라고 불리는 것은 상징적 표현의 “코드code”, 다시 말해, 지적으로 학습된 또는 인지적 요소를 필요로 하는 암묵적 친숙함을 기반으로 하는 것으로 보이며, 이는 반사적 혹은 타고난 행동이 그 자체로 미적 반응의 전체적인 윤곽선에 영향을 줄 수 있지만, 반응 전체에 있어서는 제한적인 의미만을 가질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4. 이러한 기초적인 인간 행동과 기타 인간 행동들은 L. Tiger, and R. Fox, The imperial Animal (New York, 1971)에서 광범위한 참고 문헌과 함께 찾아볼 수 있다. ↩

  5. 동물도 예술품을 만드는지 여부는 기본적으로 정의의 문제이다. 어떤 사람들은 바우어새bower bird가 둥지를 장식하는 것, 그 새의 노래와 같은 것들이 초보적인 예술적 감각의 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아래의 27번 각주를 참고.

  6. 나는 아직 출판되지 않은 원고에서 예술의 선조들을 기술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이 논문에는 이를 위한 공간이 없다.

  7. 진화의 기본 단위인 유전자, 개체, 종에 관한 현재의 논란은 이 논문에서 제시되는 선택 가치에 대한 이론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8. 예술의 정의에는 일반적으로 다음 요소 중 적어도 몇몇이 포함된다. 예술은 의식적인 의도의 산물이다, 보람을 느낀다, 서로 다른 것을 통합하는 경향이 있다, 변화와 다양성, 친숙함과 놀라움, 긴장과 해소와 관계가 있다, 무질서로부터 질서를 가져온다, 환상을 만든다, 감각적인 재료를 사용한다, 전시를 한다, 의미를 전달한다, 통일감이나 전체성을 전달한다, 창조적이다, 즐겁다, 상징적이다, 상상적이다, 즉각적이다, 표현과 소통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이들 중 어느 것도 예술 행동의 주된 특징이 아니다. 예술 작품에 이러한 요소들이 "비범한 정도unusual degree"로 존재한다는 먼로 비어즐리의 주장M. Beardsley, Aesthetics [New York, 1958], p. 528이 예술이 다른 인간의 활동 및 태도와 공유하는 이러한 요소들을 예술의 정의에 포함시키는 유일한 방법인 듯하다. 예술 행동에 대한 본 글의 분석은 전통적으로 예술에 부여된 이러한 속성을 다루지 않는다.

  9. 다른 이들은 생물 진화론적 관점에서 예술을 다루었지만, 예술이 무엇을 포함하는지 밝히거나 특별히 행동학적인 틀 안에서 예술을 다루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A. Alland, Jr., The Artistic Animal (Garden City, N.Y., 1977); R. Joyce, The Esthetic Animal (Hicksville, N.Y., 1975) 등을 참조.

  10. 예술의 "놀이" 이론을 지지한 이들은 이하를 포함한다. F. Schiller, Letters on the Aesthetic Education of Man (1795), E. H. Wilkinson and L. A. Willoughby, eds., (Oxford University Press, 1967), 14th Letter; H. Spencer, Principles of Psychology, 2nd ed. (London, 1870-72); S. Freud, Creative Writers and Daydreaming (1908) (London, 1959); J. Huizinga, Homo Ludens (London, 1949).

  11. 이와 같은 관점을 견지한 이들의 목록은 O. Rank, Art and Artist (New York, 1932), p. 29에 등장한다.

  12. H. Prinzhorn, Artistry of the Mentally Ill (1922) (New York, 1972), p. 13.

  13. O. Rank., op. Cit., and Yrjo Hirn, The Origins of Art (London, 1990)를 참조.

  14. 이 견해는 구석기 시대 동굴 벽화를 연구하는 수많은 연구자들이 지지한다. P. Ucko, and A. Rosenfeld, Paleolithic Cave Art (London, 1967)의 논의를 참조.

  15. P. Valery, Aesthetics (London, 1964), p. 214.

  16. W. Perceval Yetts, The Cull Chinese Bronzes (London, 1939), p. 75가 제안.

  17. 많은 원시 사회가 예술에 대한 단어나 개념을 갖고있지 않다. 예술이 행동학적으로 정의되기 전까지는 그들의 활동과 유물을 살펴보고, 조각, 그림, 장식된 그릇, 춤, 노래 연극 등 서구에서 작품 또는 예술의 일종이라고 부르는 것과 유사한 것을 식별하는 것 외에 다른 수단이 없다.

  18. 원시 사회에서 예술의 표현을 고려함으로써 제기된 철학적 및 기타 질문에 대한 도발적인 논의는 Anderson, Art in Primitive Societies (Englewood Cliffs, N.J., 1979)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술에 대한 다양한 비 서구적 태도와 관행에 대한 설명은 이하의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다. Carol F. Jopling, (ed.), Art and Aesthetics in Primitive Societies: A Critical Anthology (New York, 1971); Charlotte M. Otten, (ed.), Anthoropology and Art: Readings in Cross-Cultural Aesthetics (Garden City, N.Y., 1971), 그리고 Warren L. d’Azevedo, (ed.), The Traditional Artist in African Societies (Indiana University Press, 1973).

  19. A., Alland, Jr., op. Cit., p. 32 et seq.

  20. G. Charbonnier, (ed.) (1961) Conversations with Claude Levi-Strauss (London, 1969), pp. 123-2

  21. 여기서 up 그리고 leap을 사용하는 것은 가치적인 의미에서 더 높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정말로 일상적인 현실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22. P. Valery, op. Cit., pp. 148-49

  23. 라이베리아 북서부의 골라족은 예술 또는 놀이라고 부르는 두 가지 종류의 활동을 하나의 단어로 지칭한다. 골라족에게 이 활동의 특징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된다는 것이며, 이는 놀이, 축제 및 오락, 전시, 취미, 이미지 만들기, 정교하게 장식된 개인 치장품, 그리고 가볍고 하찮지만 강력하게 원하는 물건 등을 지칭할 때 사용된다. Warren L. d’Azevedo, “Sources of Gola Artistry,” pp.282-340 in Warren L. d’Azevedo, op. cit., p. 306 참조.

  24. E. Dissanayake, “A hypothesis of the evolution of art from play,” Leonardo 7: (1974) 211-17.

  25. 대부분의 원시적이고 전통적인 사회에서 예술품들은 의례의 맥락과 별도의 맥락에서 고려되지 않는다.

  26. E. Dissanayake, “An ethological view of ritual and art in human evolutionary history,” Leonardo, 12 (1979) 27-31.

  27. 이와같은 관점에 따르면, 예술은 의도가 없이 생산되지 않는다. 이와 더불어 기타 다른 이유들에 따라 우리는 동물들이 예술을 하는지 논의하지 않는다.

  28. J. H. Vaughan, Jr., “ankyangu AS ARTISTS IN Marghi society,” in W. L. d’Azevedo, (1973) op. cit., pp. 162-93.

  29. J. W. Fernandez, “The exposition and imposition of order: artistic expression in Fang culture,” in W. L. d’Azevedo, (1973) op. cit., pp. 194-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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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WIP] 인간 행동으로서 예술 | ChoiHaram